(갈도르+투르곤)

썰들 2014. 3. 17. 15:12

갈도르 관련 동인 설정 주의.

 

 

(갈도르+투르곤)

 

 

어느덧 오후였다. 아직 해가 지기까지 시간은 남아있었지만, 네브라스트의 궁정은 한가로웠다. 내일이면 곤돌린으로 이주가 시작될 예정이었다. 그 때 까지, 바쁜 일은 없었다. 이미 2층에 위치한 왕의 방은 텅 비어있었다.

 

"폐하께서도 마지막으로 바닷가에라도 다녀오시지요. 이미 아레델 공주님과 이드릴 공주님은 바닷가에 다녀오셨습니다."

비어있는 벽을 바라보던 왕에게 말을 걸어온 것은 나무 가문의 영주인 갈도르였다.

 

"준비는 이제 정말로 다 된 것입니까?"

"그렇습니다. 폐하께서 염려하실 만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갈도르님."

갈도르는 신하라기보다는 아버지 같은 존재였다. 나이도 왕인 투르곤보다 훨씬 많아서 아이였을 때는 왕이 그의 무릎 위에서 놀았던 적도 있었더랬다.

 

"아직도 존칭을 입에서 떼지 못하십니다."

"벌써 습관처럼 되어 버렸나 봅니다."

투르곤이 멋쩍은 듯 웃으며 그를 따라나섰다.

 

비냐마르 궁정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바다가 위치하고 있었다. 말을 타고 조금을 달렸을까 서쪽을 향해 광활하게 펼쳐진 바다가 눈앞에 펼쳐졌다. 왕은 말에서 내려 수평선을 응시했다. 갈도르도 왕의 곁으로 걸어 왔다. 한동안 곤돌린으로 갈 준비를 하느라 바빠서 바다에는 통 오지 못했다.

 

"이 곳에 와 보는 것도 오늘이 마지막이겠군요."

 

왕은 바다를 보면서, 새삼 감회에 젖어들었다. 아만에서 지내던 시절에 알쿠알론데의 바닷가에 간 적이 있었다. 진주며, 사파이어, 에메랄드 같은 온갖 종류의 보석들이 웅덩이마다 흩어져 있는 아만의 해안은 찬란했다. 비록 그곳처럼 갖가지 보석들로 반짝이는 바다는 아니었지만, 가운데 땅의 해변도 충분히 아름다웠다. 차갑게 얼어붙은 빙하가 녹아내려 흐르는 물들과는 달랐다. 보는 것만으로도 어린 시절이 그리워지는 그런 푸른 빛깔이었다.

 

"아쉬우십니까?"

갈도르의 말에 왕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조금도 미련이 없다면 거짓이겠지만, 이곳은 제가 계속 머무를 곳이 아닙니다. 울모님께서 말씀하신대로 곤돌린으로 가는 것이 옳은 일이겠지요."

"그래도 투르카노 폐하께서는 네브라스트를 굉장히 좋아하셨으니 분명 많이 기억이 나실 겁니다."

"그럴 것 같습니다. 계곡 속의 도시니 바다는 보이지 않을 테지요."

 

모래를 밟다보니 막 아이가 걸음마를 시작할 무렵, 아내와 백사장 위를 걷던 것이 떠올랐다. 서서히 멈추어 서서 눈을 감자 모든 것이 생생했다. 벌써 수백 년 전의 일이었지만, 셋이 같이 보냈던 시간들은 선명하게 기억이 났다.

 

"이타릴데, 그 쪽은 안 돼요."

 

투르곤의 기억 속에 남은 그녀는 한결같았다. 한결같이 아름답고 빛이 났다. 이제는 자꾸 얼굴이 희미해져 가고 있었지만, 탐스러운 금발만큼은 손에 잡힐 듯 또렷했다. 바닷물 속으로 들어가려는 어린 딸의 손을 붙잡은 엘렌웨가 그를 향해 걸어왔다. 순간 높은 파도가 덮쳐왔다. 비명이 절로 나올 것 같았다. 얼른 손을 뻗었지만, 그들은 너무 멀리 있었다. 달려 나가려던 왕은 그것이 모두 자신의 환상이었음을 깨달았다.

 

아내는 죽었고, 딸은 더 이상 어린 소녀가 아니었다. 눈조차 감지 못하고 바다 속 깊이 가라앉던 모습이 그가 보았던 아내의 마지막이었다. 그 광경은 저주라도 되듯 왕을 붙잡고, 끈질기게 놓아주지 않았다. 아무리 세월이 지나도 잊을 수 없을 일이었다.

 

"엘렌웨님 생각을 하셨습니까."

"머릿속을 읽기라도 하신 것 같습니다."

"얼굴에 빤히 쓰여 있습니다."

"좀 더 조심하겠습니다. 이렇게 나약한 왕이라니 면목이 없습니다."

"아닙니다. 오히려 지나치게 강건하시면, 보는 제가 마음이 아플 겁니다."

 

오래도록 왕이 움직이지 않자 갈도르가 그를 돌아보며 말했다. 투르곤은 속마음을 들킨 것 같아 미안해졌다. 악몽 같은 기억이 차츰 흐릿해질 법도 했는데, 전혀 흐려지지 않았다. 갈도르는 온화하게 웃었다. 그의 저택 근처를 둘러싼 나무들과도 같이 든든한 웃음이었다.

 

"사실 공께서 저를 따르겠다고 하셨을 때, 적잖이 놀랐습니다."

"그러십니까?"

"분명히 아버님을 따를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지금도 저를 따르는 영주들 중에 가장 연장자이시지 않습니까. 공처럼 고귀하신 분께서 제 휘하로 들어오실 줄은 몰랐습니다."

"핀골핀 대왕의 차남께서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가운데 땅으로 떠나기 전, 아만의 놀도르는 각자가 따르는 주군에게 충성을 맹세했다. 길고도 오랜 여행이 될 터였고, 남을 자와 떠나는 자가 갈리는 시기였다. 그 때, 갈도르도 투르곤을 영원토록 주군으로 모시겠노라 서약을 했었다.

 

"저보다 아버님 곁에 계셨으면 많은 일들을 하실 수 있으셨을 텐데, 미덥지 못한 제가 공을 잡아두는 것 같습니다."

"핀골핀 대왕께서도 위대한 군주시지만, 폐하와 폐하의 아버님은 다르십니다. 아버님께서 하시지 못하신 일도 폐하께서 하실 수 있으실 겁니다."

"과찬이십니다. 아버님은 산과 같은 분이신 걸요. 제가 아무리 노력해도 넘을 수는 없을 겁니다. 지금까지 제가 이뤄낸 것이 아무것도 없는걸요."

"어떤 일이든 폐하께서 원하시는 일을 하시면 됩니다. 온돌린데는 폐하의 왕국입니다. 폐하께서 꿈꾸시는 대로 가꿔나가시면 됩니다."

"제가 분발해야 겠습니다."

 

울모의 계시를 받아 세운 곤돌린은 투르곤의 왕국이었다. 그가 찾아내고, 그의 계획대로 세워진 곳이고, 그가 앞으로 다스릴 곳이었다. 비어있던 계곡 속의 땅이 점점 자신이 꿈꾸던 곳으로 변해가는 모습을 기쁘게 바라보았고, 이제 정말로 그 땅에 가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네브라스트에서처럼 신다르와 놀도르의 통합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곳이 없는데, 이것은 폐하가 아니셨으면 누구도 하지 못하셨을 겁니다. 지금은 이 땅에 원래 살고 있던 신다르도 폐하를 왕으로 섬기고 있지 않습니까."

"누구라도 잘 해내셨을 겁니다. 저밖에 할 수 없는 일은 아니었을 겁니다."

 

갈도르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가운데 땅의 다른 어떤 곳에서도 네브라스트처럼 신다르와 놀도르가 융화된 곳이 없었던 것이다. 그것은 글로르핀델을 위시한 영주들이 추악한 동족살해에 가담하지 않은 탓도 있었다.

 

"투르카노 폐하, 여덟 명의 영주들이 모두 왕을 따르는 건, 왕께서 그만한 신뢰를 얻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늘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귀공들은 제 자랑이고, 제게 더할 나위 없는 지복입니다."

 

태양빛이 해변에 반짝였지만, 눈이 따가울 정도는 아니었다. 따사롭고 온화했다. 투르곤은 갈도르와 함께 해변을 걸었다. 해가 환하게 떠 있는 시간에 바닷가에 와 보는 것은 정말로 간만이었다. 왕은 여유를 만끽하며, 그가 정착하게 될 땅을 머릿속으로 그려보고 있었다.

 

 

네브라스트의 투르곤은 곤돌린에서처럼 오만하지는 않았으리라고 믿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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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슈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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