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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03.21 (핀골핀+글로르핀델)
  2. 2014.03.17 (핀웨x핀골핀)
  3. 2014.03.17 (갈도르+투르곤)
  4. 2014.03.16 (글로르핀델x핀골핀)
  5. 2014.03.16 (피나르핀x핀골핀)
  6. 2014.03.15 (멜코르x핀골핀)

(핀골핀+글로르핀델)

썰들 2014. 3. 21. 10:20

태양의 1시대 20년 경(히슬룸, 바라드 에이셀)

 

 

(핀골핀+글로르핀델)

 

 

핀골핀 왕이 막 잠자리에 들려고 생각했을 때, 방문을 두드리는 자가 있었다. 황금꽃 가문의 영주인 글로르핀델이었다. 아직 환복을 하지도 않아서 바로 들어오라 일렀다. 모습을 드러낸 금발 머리의 청년은 편한 옷차림으로 갈아입은 뒤였다. 그만큼 그는 앙과 허물없는 사이였다. 이 땅에 오기 전부터 친형제처럼 지내서 종종 이런 식으로 만나기도 했다.

 

"네브라스트로 갈 생각이라 들었다."

 

히슬룸에 지내던 핀곤과 투르곤, 아레델은 각각 도르로민과 네브라스트로 향할 예정이었다. 먼저 핀골핀의 큰아들인 핀곤이 얼마 전에 도르로민으로 떠났고, 이제 작은 아들과 고명딸이 네브라스트로 떠나게 되는 것이다.

 

"그렇습니다. 투르카노를 따라 갈 생각입니다."

 

글로르핀델은 왕의 앞인데도 스스럼없이 왕자의 이름을 불렀다. 다른 이였다면 당장 목이 떨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일이었지만, 핀골핀은 그를 나무라지 않았다. 그리 일렀는데도 둘이 있을 때면 아만에서 친근하게 부르던 버릇이 튀어나오는 모양이었다. 남들이 없는 자리라서 일단 넘기기로 했다.

 

"그래, 너는 늘 그 아이를 친형제처럼 아꼈으니까."

"하여 서운하십니까?"

 

금발의 청년은 왕의 얼굴을 살폈지만, 핀골핀의 얼굴에 별로 섭섭하다는 기색은 없었다. 왕은 크게 웃거나 크게 슬퍼하는 일이 없었고, 대개 점잖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글로르핀델의 마음만 아쉬운 것 같기도 했다. 그는 괜히 심통이 나서 자신이 볼을 살짝 부풀린 것도 몰랐다.

 

"아니다. 너라면 믿을 수 있지. 장난기만 좀 가라앉히면 괜찮을 텐데."

 

곧 핀골핀의 입가에 가는 미소가 떠올랐다. 왕의 앞에서 저런 얼굴을 보이는 글로르핀델이 마치 자신의 아이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커버렸는데도 가끔은 부산스레 뛰어다니던 금발의 소년이 떠오르고야 마는 것이다.

 

"대왕께는 제가 아직도 어린 소년으로 보이시나 봅니다."

 

그런 왕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글로르핀델이 작게 키득거렸다. 청년이 어렸을 때부터 핀골핀은 이미 성년이었기 때문에 어쩌면 자신은 귀여운 막냇동생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을지도 몰랐다.

 

"넌 내 동생보다도 어리니 당연하잖느냐."

"그야 그렇지요. 아마도 네브라스트로 떠나면 당분간 찾아뵙기는 어려울 듯 합니다."

 

핀골핀의 말을 능청스레 넘긴 글로르핀델이 다시 본론으로 돌아갔다. 마치 소년 같은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지만, 투르곤을 따르기로 한 여덟 명의 영주 중 한명이었다. 그가 맡을 일이 그리 가벼운 것은 아니었다.

 

"그렇겠지. 이것저것 챙겨야 할 게 많을 거다."

 

왕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어쩌면 상당히 오랫동안 보지 못할 수도 있는데, 아무렇지도 않은 듯 했다.

 

"아라카노. 제가 당신의 가문을 따라 망명을 떠난 것과 당신의 아이들을 아끼는 건, 당신을 경애하기 때문입니다."

 

간만에 들어보는 이름에 왕은 잠시 동안 말이 없었다. 글로르핀델의 부모들은 아만을 떠나지 않았고, 그만이 핀골핀 가문을 따라 가운데 땅으로 오게 되었다. 그것은 그만큼 그가 핀골핀 가문에 애착을 느끼고 있어서였다.

 

"하고 싶은 말이 뭔가."

"투르카노는 왕을 많이 닮았습니다."

 

큰 아들인 핀곤보다도 핀골핀의 차분한 외모와 성품은 작은 아들인 투르곤이 많이 물려받았다.

 

"내 아들이니 당연히 나를 닮았겠지."

"제가 보지 못한 어린 시절의 왕을 보는 것 같아서 자꾸 눈길이 갑니다."

 

비록 장성한 모습 밖에 보지 못했지만, 글로르핀델은 왕의 어린 아들을 볼 때면, 가끔씩 어린 시절의 왕도 저러지 않았을까 생각을 했다. 투르곤처럼 집 안에 머무르기 보다는 밖에 나가기는 했겠지만, 책을 넘기는 진지하면서도 어린 눈망울에서 핀골핀의 어린 모습을 그려보는 것이다.

 

"평소에도 그랬지만, 오늘따라 쓸데없는 말이 더 많구나."

"대왕은 강한 분이시고, 제가 곁에서 지켜드리지 않아도 괜찮으실 거라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 떠나게 된 겁니다."

 

이복형제인 페아노르처럼 모든 방면에서 뛰어난 천재는 아니었지만, 글로르핀델에게 왕은 누구보다 강한 자였다. 굳건하고, 다른 이를 지탱해 줄 수 있는 의지가 되는 군주였다.

 

"잘 생각했다. 나는 걱정할 것 없어. 투르카노나 잘 챙겨주거라. 그 녀석이 말은 안 해도 빙하에서 제 아내를 잃은 뒤로 추운 이 땅에 머무르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으니, 따뜻한 서쪽 해안으로 가는 건 잘 된 일이다."

 

온화했던 서쪽 땅과는 다르게 핀골핀의 무리가 정착하게 된 히슬룸은 겨울이 되면 상당히 추워졌다. 겨울이 시작되려 하면, 투르곤은 외투로 몸을 꽁꽁 감싼 채 꼭 필요한 일이 아니면 밖으로 나오려고도 하지 않았다.

 

"안녕히 지내십시오. 나의 왕이시여. 아라카노의 늠름한 모습을 한동안 보지 못한다고 생각하니 벌써 아쉬운데요?"

"또 그런 소릴. 엉뚱한 소리는 그만하고 빠트린 것이 없는지 다시 잘 살펴보거라. 미리 길을 다 봐 두었다고 하더니 막상 숲에 들어가서 헤맨 적이 한두 번이 아니지 않느냐."

 

글로르핀델은 아는 길이라고 하면서 핀골핀을 엉뚱한 길로 가게 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매번 숲 속을 헤매면서 소년에게 뭐라고 하려다가도 배시시 웃는 모습을 보면 그런 생각이 달아나 버려 곤란했던 핀골핀이었다.

 

"옛날 얘기입니다. 왕이야말로 이릿세와 산책을 나가셨다가 저와의 약속을 잊으신 적도 있지 않으십니까."

"그거야 딸애가 워낙 이리저리 뛰어다녀서 그렇지."

 

핀골핀의 고명딸인 아레델은 남자 형제들 못지않게 활기찼고, 아이의 뒤를 쫓아다니다 보면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도 모를 지경이었다. 글로르핀델과 사냥을 가기로 약속했는데, 집에 돌아와서야 생각이 난 적도 있었다.

 

"하하, 여전하십니다. 곤란한 표정의 대왕을 보는 건 늘 재미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못된 버릇이야. 참으로 건방진 영주일세."

 

글로르핀델의 말에 핀골핀이 약간 멋쩍은 표정을 짓자 그가 해사하게 웃었다. 엄숙한 얼굴이 청년의 말에 흐트러질 때면, 실로 유쾌한 기분이 드는 것이었다. 핀골핀은 짐짓 엄한 목소리로 말했지만, 약간의 웃음기가 배어있었다.

 

"버릇없는 글로르핀델은 이만 물러가 보지요. 떠나기 전에 다시 인사 올리겠습니다."

"투르카노를 너무 놀리지는 말고, 내색은 안 해도 생각보다 섬세한 아이니까."

 

계속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간신히 참은 글로르핀델이 정중하게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핀골핀은 혹시 그가 자신의 아들에게 짓궂게 굴지 않을까 주의를 주었다.

 

"명심하도록 하도록 하지요. 왕의 아드님인데 제가 잡아먹기야 하겠습니까."

"입버릇부터 어떻게 하는 게 좋겠구나. 영주라는 자가 그렇게 경박해서야 되겠느냐."

"노력은 해 보겠습니다. 그럼, 편히 쉬십시오."

 

평소의 핀골핀을 알고 있는 자들이라면, 글로르핀델과의 격의 없는 대화에 상당히 놀랐을 것이다. 그 정도로 둘 사이는 가족처럼 친밀하게 보였다. 험한 빙하 속을 함께 헤쳐 나와 더 그랬을지도 몰랐다.

 

 

제안의 설정이 이리저리 흔들리는 두 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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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웨x핀골핀)

썰들 2014. 3. 17. 22:25

은근한 수위 묘사 주의

 

 

(핀웨x핀골핀)

 

 

핀웨는 언젠가부터 그를 애써 쫓으려 하지 않는 강한 눈빛에 더 끌리게 되었다. 장남은 늘 그의 사랑에 목말라 있었지만, 그는 때로 맹목적일 정도로 자신만 바라보는 아들이 부담스러울 때도 있었다. 가끔은 페아노르의 불길에 자신마저 타 버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핀골핀은 그렇지 않았다. 물과도 같았다. 겉으로 보기에는 차갑게 보였지만, 주변의 것들을 부드럽게 감싸 안는 모습이 핀웨와 상당히 닮아있었다.

 

"오히려 네가 더 맏아들 같구나."

 

핀웨가 옆으로 다가온 차남을 보며 웃었다. 시끄러운 자리는 싫다며 장남은 금방 저택으로 돌아가 버렸다. 아버지 곁에 있는 것은 좋아했지만, 귀찮게 들러붙는 다른 요정들이 성가셔서 견딜 수가 없었던 것이다. 아버지가 붙잡아 주길 바랐지만, 핀웨는 아들을 붙잡지 않았다. 다른 자리였다면 몰라도 신년을 기념하는 축제였던 것이다. 티리온의 왕인 핀웨의 저택에서 열린 신년제는 상당히 성대했다. 바냐르와 텔레리까지 함께하는 자리였다. 놀도르만의 무도회였다면 모를까 놀도르의 군주인 핀웨가 자리를 뜨는 것은 격식에 어긋났다. 핀골핀은 핀웨의 칭찬에 정중하게 고개를 숙여 답했다. 흠잡을 데 없는 왕자다운 예였다. 장성한 왕자의 외모는 날카로운 외모의 제 형과는 거리가 멀었다. 야무지면서도 위엄 있는 얼굴이었다.

 

"형님은 다시 오실 생각이 없으신가 봅니다."

"그래, 나도 좀 술이 과한 것 같구나."

 

새로 수확한 술의 맛이 훌륭한데다가 장남이 곁에 있지 않아 대신 술을 받아주지도 않았다. 페아노르도 술이 강한 편은 아니었지만, 아버지가 취하는 것은 보고 싶지 않다며 핀웨에게 향하는 술잔을 다 제가 빼앗아가 마셔버렸다. 그러다가 핀웨보다 먼저 저택으로 보내지는 일도 있었다. 가지 않겠다며 고집을 부리는 것을 핀웨가 직접 데려다 줄 때도 있었다. 아무튼 핀웨만을 향해 건네진 술잔들 덕분에 그는 꽤 과음을 한 뒤였다. 술에는 강한편이라 할 수 있었지만, 오늘은 슬슬 취기가 돌고 있었다.

 

"잠시 쉬시지요. 이곳에는 제가 있겠습니다."

"아니다, 조금만 더 있다가 함께 가는 게 좋겠다."

 

핀골핀도 핀웨의 모습을 보니 붉어진 얼굴을 흘깃 보더니 침실로 모셔가려했다. 웬일인지 핀웨는 그런 아들의 청을 물리쳤다. 순순히 혼자서 방으로 들어갔으면 일이 달라졌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결국 몇 잔을 더 받아 마시고 나서야 핀골핀의 부축을 받아 안방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축하주를 올리는 자들이 계속 그의 곁으로 다가왔다. 옆에서 핀골핀이 말리려고 했지만, 흥이 오른 핀웨는 그에게 술을 따르는 자들을 말리지 않았다. 아내인 인디스는 신년을 맞아 친정에 들렀다 올 예정이어서 침실은 텅 비어있었다.

 

"다른 분들께는 제가 인사드리겠습니다. 이만 주무십시오."

 

핀웨의 상태를 보자 영 안 되겠다 싶었던지 핀골핀이 아버지를 침대 쪽으로 데려갔다. 그러나 오히려 침대 위에 눕게 된 것은 그였다. 당황해서 일어서려 했지만, 취해있는 핀웨의 힘은 평소보다 강했다. 놀도르 대왕이니만큼 무력에 그리 자신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티리온의 대왕이라는 위치 때문에 평화로운 아만에서는 그 힘을 드러내 사용할 일이 없기는 했지만, 가운데 땅에 있었을 때는 그도 상당히 무용을 뽐내었다.

 

"아버지? 많이 취하셨나봅니다. 전 어머니가 아닙니다."

"아들아."

 

기괴한 구도였다. 차라리 그를 지독히 미워하는 이복형제라면 모를까, 핀웨는 아이들에게 손찌검 한 번 하지 않는 다정한 아버지였다. 움직일 수도 없게 아들의 어깨를 압박하는 핀웨의 모습을 보며, 핀골핀은 마치 자신이야말로 술에 취해 꿈을 꾸는 것인가 의심하고 싶어질 정도였다. 술에 취한 아버지가 그를 어머니와 착각이라도 했나 싶어 입을 열었지만, 핀웨는 똑똑히 핀골핀을 아들이라고 호칭했다.

 

"너는 나를 많이 닮았다."

 

술에 취해 있었지만, 핀웨의 목소리만큼은 또렷했다. 유창한 목소리는 백성들 앞에서 연설을 하는 목소리 그대로였다. 가운데 땅의 타탸르가 그를 따라 아만에 오게 만들었을 때와 같이 듣는 자를 잡는 힘이 있었다. 듣는 것만으로도 설득이 될 것 같은 어찌 보면 마력을 담은 것 같은 목소리였다. 핀골핀은 핀웨의 상태가 평소와는 다르다는 것을 알면서도 목소리에 눌리기라도 한 듯 가만히 있었다.

 

"오히려 페아나로, 그 아이보다도 닮았지."

 

그의 손이 아들의 뺨을 향해 다가가다가 멈추었다. 멈추었던 손이 아들의 머리로 향했고, 그의 손가락 틈새로 핀골핀의 머리카락이 삐져나왔다. 페아노르는 아버지와 흡사한 외모인 핀골핀의 외모를 몹시 못마땅하게 여겼다. 그 정도로 그들은 닮아있었다. 그의 차남에게서는 어머니인 인디스의 모습을 찾아내기 힘들 정도였다. 누구도 부자 사이라는 것을 의심치 않을 정도로 비슷했다.

 

"의지가 되는 아들이지. 불안해서 품 안에서 보듬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페아나로와는 달라."

 

핀웨의 목소리는 점점 내리깔리고 있었다. 빛과도 같아 보이는 그였지만, 속마음마저 늘 그런 건 아니었다. 웃고 있는 뒤에는 남들이 모르는 아픔도 상처도 있었다. 소중한 친우는 가운데 땅에 남아 있어 그가 있는 곳으로 오지 못했다. 장남을 낳아 준 아내는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곁을 떠나버렸다. 지금의 아내인 인디스를 제외하면, 누구도 그의 상처를 보듬어 주는 이가 없었다. 그럼에도 그가 빈 구멍을 모두 메울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엘웨나 미리엘의 이야기를 인디스에게 아무렇지 않게 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아들, 아버지의 위안이 될 생각은 없니?"

 

웃음. 아들에게, 아내에게 지어보이던 자애로운 웃음이었으나, 핀골핀에게는 그것이 이복형의 싸늘한 시선보다도 더 무겁게 다가왔다. 피할 수가 없을 것 같았다. 피해서도 안 될 것 같았다. 거부하면, 정말로 망가져 내리는 아버지를 볼 것만 같았다. 그러한 잠시 동안의 망설임에서부터 모든 것이 시작되었다. 뒤늦게 그와 아버지에게 있었던 일을 알게 된 그의 형은 예전보다 더욱 그를 싫어하게 되었고, 그의 아버지는 여전히 그의 형을 사랑했으며, 그럼에도 그를 의지했다. 가혹할 정도로 일그러진 관계였다.

 

 

핀웨 대왕님 왜곡해서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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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도르+투르곤)

썰들 2014. 3. 17. 15:12

갈도르 관련 동인 설정 주의.

 

 

(갈도르+투르곤)

 

 

어느덧 오후였다. 아직 해가 지기까지 시간은 남아있었지만, 네브라스트의 궁정은 한가로웠다. 내일이면 곤돌린으로 이주가 시작될 예정이었다. 그 때 까지, 바쁜 일은 없었다. 이미 2층에 위치한 왕의 방은 텅 비어있었다.

 

"폐하께서도 마지막으로 바닷가에라도 다녀오시지요. 이미 아레델 공주님과 이드릴 공주님은 바닷가에 다녀오셨습니다."

비어있는 벽을 바라보던 왕에게 말을 걸어온 것은 나무 가문의 영주인 갈도르였다.

 

"준비는 이제 정말로 다 된 것입니까?"

"그렇습니다. 폐하께서 염려하실 만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갈도르님."

갈도르는 신하라기보다는 아버지 같은 존재였다. 나이도 왕인 투르곤보다 훨씬 많아서 아이였을 때는 왕이 그의 무릎 위에서 놀았던 적도 있었더랬다.

 

"아직도 존칭을 입에서 떼지 못하십니다."

"벌써 습관처럼 되어 버렸나 봅니다."

투르곤이 멋쩍은 듯 웃으며 그를 따라나섰다.

 

비냐마르 궁정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바다가 위치하고 있었다. 말을 타고 조금을 달렸을까 서쪽을 향해 광활하게 펼쳐진 바다가 눈앞에 펼쳐졌다. 왕은 말에서 내려 수평선을 응시했다. 갈도르도 왕의 곁으로 걸어 왔다. 한동안 곤돌린으로 갈 준비를 하느라 바빠서 바다에는 통 오지 못했다.

 

"이 곳에 와 보는 것도 오늘이 마지막이겠군요."

 

왕은 바다를 보면서, 새삼 감회에 젖어들었다. 아만에서 지내던 시절에 알쿠알론데의 바닷가에 간 적이 있었다. 진주며, 사파이어, 에메랄드 같은 온갖 종류의 보석들이 웅덩이마다 흩어져 있는 아만의 해안은 찬란했다. 비록 그곳처럼 갖가지 보석들로 반짝이는 바다는 아니었지만, 가운데 땅의 해변도 충분히 아름다웠다. 차갑게 얼어붙은 빙하가 녹아내려 흐르는 물들과는 달랐다. 보는 것만으로도 어린 시절이 그리워지는 그런 푸른 빛깔이었다.

 

"아쉬우십니까?"

갈도르의 말에 왕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조금도 미련이 없다면 거짓이겠지만, 이곳은 제가 계속 머무를 곳이 아닙니다. 울모님께서 말씀하신대로 곤돌린으로 가는 것이 옳은 일이겠지요."

"그래도 투르카노 폐하께서는 네브라스트를 굉장히 좋아하셨으니 분명 많이 기억이 나실 겁니다."

"그럴 것 같습니다. 계곡 속의 도시니 바다는 보이지 않을 테지요."

 

모래를 밟다보니 막 아이가 걸음마를 시작할 무렵, 아내와 백사장 위를 걷던 것이 떠올랐다. 서서히 멈추어 서서 눈을 감자 모든 것이 생생했다. 벌써 수백 년 전의 일이었지만, 셋이 같이 보냈던 시간들은 선명하게 기억이 났다.

 

"이타릴데, 그 쪽은 안 돼요."

 

투르곤의 기억 속에 남은 그녀는 한결같았다. 한결같이 아름답고 빛이 났다. 이제는 자꾸 얼굴이 희미해져 가고 있었지만, 탐스러운 금발만큼은 손에 잡힐 듯 또렷했다. 바닷물 속으로 들어가려는 어린 딸의 손을 붙잡은 엘렌웨가 그를 향해 걸어왔다. 순간 높은 파도가 덮쳐왔다. 비명이 절로 나올 것 같았다. 얼른 손을 뻗었지만, 그들은 너무 멀리 있었다. 달려 나가려던 왕은 그것이 모두 자신의 환상이었음을 깨달았다.

 

아내는 죽었고, 딸은 더 이상 어린 소녀가 아니었다. 눈조차 감지 못하고 바다 속 깊이 가라앉던 모습이 그가 보았던 아내의 마지막이었다. 그 광경은 저주라도 되듯 왕을 붙잡고, 끈질기게 놓아주지 않았다. 아무리 세월이 지나도 잊을 수 없을 일이었다.

 

"엘렌웨님 생각을 하셨습니까."

"머릿속을 읽기라도 하신 것 같습니다."

"얼굴에 빤히 쓰여 있습니다."

"좀 더 조심하겠습니다. 이렇게 나약한 왕이라니 면목이 없습니다."

"아닙니다. 오히려 지나치게 강건하시면, 보는 제가 마음이 아플 겁니다."

 

오래도록 왕이 움직이지 않자 갈도르가 그를 돌아보며 말했다. 투르곤은 속마음을 들킨 것 같아 미안해졌다. 악몽 같은 기억이 차츰 흐릿해질 법도 했는데, 전혀 흐려지지 않았다. 갈도르는 온화하게 웃었다. 그의 저택 근처를 둘러싼 나무들과도 같이 든든한 웃음이었다.

 

"사실 공께서 저를 따르겠다고 하셨을 때, 적잖이 놀랐습니다."

"그러십니까?"

"분명히 아버님을 따를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지금도 저를 따르는 영주들 중에 가장 연장자이시지 않습니까. 공처럼 고귀하신 분께서 제 휘하로 들어오실 줄은 몰랐습니다."

"핀골핀 대왕의 차남께서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가운데 땅으로 떠나기 전, 아만의 놀도르는 각자가 따르는 주군에게 충성을 맹세했다. 길고도 오랜 여행이 될 터였고, 남을 자와 떠나는 자가 갈리는 시기였다. 그 때, 갈도르도 투르곤을 영원토록 주군으로 모시겠노라 서약을 했었다.

 

"저보다 아버님 곁에 계셨으면 많은 일들을 하실 수 있으셨을 텐데, 미덥지 못한 제가 공을 잡아두는 것 같습니다."

"핀골핀 대왕께서도 위대한 군주시지만, 폐하와 폐하의 아버님은 다르십니다. 아버님께서 하시지 못하신 일도 폐하께서 하실 수 있으실 겁니다."

"과찬이십니다. 아버님은 산과 같은 분이신 걸요. 제가 아무리 노력해도 넘을 수는 없을 겁니다. 지금까지 제가 이뤄낸 것이 아무것도 없는걸요."

"어떤 일이든 폐하께서 원하시는 일을 하시면 됩니다. 온돌린데는 폐하의 왕국입니다. 폐하께서 꿈꾸시는 대로 가꿔나가시면 됩니다."

"제가 분발해야 겠습니다."

 

울모의 계시를 받아 세운 곤돌린은 투르곤의 왕국이었다. 그가 찾아내고, 그의 계획대로 세워진 곳이고, 그가 앞으로 다스릴 곳이었다. 비어있던 계곡 속의 땅이 점점 자신이 꿈꾸던 곳으로 변해가는 모습을 기쁘게 바라보았고, 이제 정말로 그 땅에 가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네브라스트에서처럼 신다르와 놀도르의 통합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곳이 없는데, 이것은 폐하가 아니셨으면 누구도 하지 못하셨을 겁니다. 지금은 이 땅에 원래 살고 있던 신다르도 폐하를 왕으로 섬기고 있지 않습니까."

"누구라도 잘 해내셨을 겁니다. 저밖에 할 수 없는 일은 아니었을 겁니다."

 

갈도르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가운데 땅의 다른 어떤 곳에서도 네브라스트처럼 신다르와 놀도르가 융화된 곳이 없었던 것이다. 그것은 글로르핀델을 위시한 영주들이 추악한 동족살해에 가담하지 않은 탓도 있었다.

 

"투르카노 폐하, 여덟 명의 영주들이 모두 왕을 따르는 건, 왕께서 그만한 신뢰를 얻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늘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귀공들은 제 자랑이고, 제게 더할 나위 없는 지복입니다."

 

태양빛이 해변에 반짝였지만, 눈이 따가울 정도는 아니었다. 따사롭고 온화했다. 투르곤은 갈도르와 함께 해변을 걸었다. 해가 환하게 떠 있는 시간에 바닷가에 와 보는 것은 정말로 간만이었다. 왕은 여유를 만끽하며, 그가 정착하게 될 땅을 머릿속으로 그려보고 있었다.

 

 

네브라스트의 투르곤은 곤돌린에서처럼 오만하지는 않았으리라고 믿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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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르핀델x핀골핀)

썰들 2014. 3. 16. 21:25

아만 시절

 

 

(글로르핀델x핀골핀)

 

 

글로르핀델은 처음 만났을 때에 비하면, 이제 제법 자라있었다. 소년은 동생처럼 눈부신 금발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온화하고 조용한 동생에 비하면, 보고만 있어도 기분이 유쾌해질 정도로 상당히 다른 성격이었다. 그 뿐만 아니라, 소년은 마치 제가 핀골핀의 애완동물이라도 되는 것처럼 그가 황금꽃 가문의 저택에 방문할 때면, 즐거운 목소리를 내며 달려왔다. 그래도 어린애처럼 제 성질을 이기지 못하는 형님을 보다 글로르핀델을 만날 때가 좋았다. 소년의 싱그러운 웃음은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풀릴 정도였다. 그렇다고 마냥 얌전하기만 한 건 아니었으나, 야단을 치려다가도 웃음이 나오고 빙그레 미소를 짓게 되었다.

 

"아라카노, 오늘은 저 쪽으로 가보지 않겠어요?"

 

소년은 금발을 흩날리며 핀골핀의 옆쪽으로 달려왔다. 형인 페아노르와는 정답게 사냥을 나올 일이 없었고, 동생인 피나르핀은 누이들과 집에 있는 것을 더 좋아했다. 자연스레 다른 자들과 사냥을 나갈 수밖에 없었는데, 그 중에 가장 자주 함께하는 것이 글로르핀델이었다. 소년은 어려서부터 핀웨의 저택을 드나들었고, 핀골핀이 아나이레와 결혼한 뒤에도 친동생이라도 된 마냥 저택에 들르고는 했다. 두 부부만이 사는 저택이라 다른 이가 찾아오는 것은 반가운 일이었다.

 

"식사라도 하고 가요. 글로르핀델"

"감사합니다. 아나이레님."

 

핀골핀의 아내인 아나이레도 금발의 소년이 마치 가족이라도 되는 양 상냥하게 대해 주었다. 아직 그들의 사이에서 아이가 없어서 셋이서 함께 식사를 할 때면 가족이라도 된 기분이었다. 소년이 음식이 담긴 그릇을 엎지르기라도 하면 핀골핀은 자신이 아버지라도 된 것처럼 잔소리 몇 마디를 했고, 아나이레가 곧 새 음식을 가져다주었다. 평화로운 나날들이었다.

 

언제나 서글서글하게 웃는 소년은 핀골핀을 친형이라도 되듯 친근하게 아라카노라고 불렀다. 이복형인 페아노르와 다르게 그가 부르는 이름에는 친애의 감정이 가득해서 듣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았다. 소년의 안내를 따라 숲 속으로 깊이 들어갈수록 녹음이 짙어졌다. 라우렐린의 금빛이 희미하게 보일 정도로 짙은 녹색 빛이었다. 공기는 한층 맑았지만, 너무 깊이 들어가는 게 아닌가 싶었다. 길은 알고 있냐고 물었지만, 글로르핀델은 핀골핀의 말에도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이리 와 보실래요?"

 

소년이 가리킨 쪽에는 자그마한 시냇물이 흐르고 있었다. 점점 서늘한 느낌이 든다 싶더니 물이 흐르고 있어서 그런 모양이었다. 이미 와 본적이 있는 듯 소년은 익숙하게 신발을 벗어던지더니 물속에 들어갔다. 씨익 웃은 글로르핀델은 핀골핀을 향해 물을 뿌렸다. 가만히 서 있으려고 했는데, 계속 해서 들어오라는 듯 물을 뿌리기 시작했다. 마지못해 핀골핀도 등에 맨 활과 화살통을 내려두고, 신발을 벗은 채 물 속으로 들어갔다. 보기보다 차가운 시냇물이었지만, 시원해서 복잡했던 머릿속이 절로 맑아지는 것 같았다.

 

서로에게 물을 튀기고, 얼굴에 튄 물을 닦아 내리느라 정신이 없었다. 한참 정신없이 물장구를 치느라 정신이 없었는데, 소년이 핀골핀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둘 사이에는 약간의 거리가 있었는데, 물속으로 걸어온 소년이 핀골핀에게 두 눈을 감으라고 했다. 뭘 하려는 거냐고 물었지만, 글로르핀델은 아무 답도 없이 배시시 웃을 뿐이었다. 핀골핀이 눈을 감지 않자, 소년이 양손을 들어 올려 핀골핀의 눈을 막으려고 했다. 그는 어쩔 수 없이 천천히 눈을 감았다. 눈앞에서 소년의 금발과 얼굴이 사라져 버렸을까, 이마에 따스한 온기가 번졌다. 부드러운, 금색의 빛과도 같은 온기였다.

 

"어떤가요?"

 

다시 눈을 뜨니 조금 위쪽에 있었던 소년의 얼굴이 바로 코앞에 보였다. 핀골핀은 장난치지 말라고 하며 글로르핀델의 이마를 주먹으로 꾹 눌렀다. 소년은 살짝 붉은 자국이 남은 이마를 만지작거렸다. 움직이지도 않고 가만히 물속에 계속 발을 담그고 있으려니 슬슬 추워질 것 같았다. 그 사이에 핀골핀이 물속에서 나가려고 몸을 돌렸는데, 소년이 그의 등을 껴안았다. 아이가 어머니에게 매달리는 것 같이 친밀함이 가득한 동작이었다. 핀골핀은 소년이 귀찮지는 않았지만, 물 밖으로 나가기 위해 등에 매달려 있는 두개의 팔을 떼어내려 했다. 하지만, 글로르핀델은 그의 등에 얼굴을 묻어버린 채 움직이지 않았다.

 

"참 좋네요."

 

어느 새, 소년은 그도 쉽게 떼어낼 수 없을 정도로 훌쩍 자라있었다. 생각해 보니 요즘 들어 키도 부쩍 자라서 핀골핀과 눈높이가 얼추 비슷해졌을 정도였다. 그래도 아직 소년에 비하면 핀골핀 쪽이 키도 더 크고 힘도 더 세었다. 마침내 소년을 떼어낸 그가 글로르핀델의 등을 툭툭 두드렸다. 그의 손에는 상대가 아프지 않게 힘이 담겨있지 않았다. 입가에는 가는 미소가 걸려있었다. 친동생보다 더 형처럼 자신을 대하는 소년이 귀엽다는 그런 의미가 담겨있는 것 같았다.

 

"많이 심심했나 보네."

 

그의 얼굴에는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이 떠올라 있었고, 글로르핀델 역시 아무렇지 않게 웃어보였다. 아직은 아니었다. 지금은 일렀다. 그래도 그는 이미 자라버렸다. 핀골핀에는 미치지 못할 지라도 어린 날의 그는 아니었다. 저 얼굴이 어떻게 변할 지 궁금했다. 단정한 얼굴이 흐트러질 만한 일이 생긴다면, 그 때는 지금처럼 태연한 얼굴로 웃어넘길 수는 없을 것이다. 언제가 될지는 그도 핀골핀도 알 수 없겠지만, 거기까지 생각이 향하자 문득 자연스럽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 혼자서 신이 난 글로르핀델을 마주한 핀골핀은 별 싱거운 녀석 다 보겠다는 듯 풀어두었던 화살과 화살통을 주워들었다. 아직까지 잡은 동물 한 마리 없었으니 이제부터 사냥에 집중해야 했다.

 

 

금화공 성격은 아직도 헷갈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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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나르핀x핀골핀)

썰들 2014. 3. 16. 07:12

성격 붕괴 주의.

 

 

(피나르핀x핀골핀)

 

 


피나르핀이 핀골핀의 저택에 오게 된 건 막내딸인 아르타니스를 데려가기 위해서였다. 오랜만에 동갑내기인 사촌 자매 아레델과 놀겠다고 하더니 오기로 한 시간이 지났는데도 돌아오지 않았다. 여동생을 끔찍하게 아끼는 장남이 데려오겠다고 하는 걸 그가 직접 데리러 가겠다며 만류했다. 친형제인 핀골핀에게 할 말도 있었으니 겸사겸사 가 볼 생각이었다. 예상했던 대로 핀골핀의 저택에도 딸의 모습은 보이지 없었다. 보나마나 아레델이 이리저리 끌고 다니다 보니 시간이 가는 줄도 몰랐을 것이다.

 

"그렇군요. 그럼 이릿세와 네르웬이 올 때까지 기다려야겠습니다."

"마음대로 해. 슬슬 돌아올 때도 되었으니까."

그가 핀골핀의 옆에 있는 의자에 막 앉으려 했을 때, 밖에서 아이들의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빠르게 달려오는 발걸음과 천천히 걸어오는 발걸음, 두개의 소리가 겹쳐서 들렸다.

 

"아버지, 저 왔어요!"

얼굴에 흙을 잔뜩 묻힌 흑발의 소녀가 핀골핀의 품에 안겼다. 나갈 때 까지만 해도 멀쩡했던 옷은 얼굴처럼 흙투성이가 되어있었다. 핀골핀의 딸인 아레델은 늘 그런 식이었다. 옷을 버리는 것도 신경 쓰지 않고 남자 아이들처럼 뛰어놀고는 했다.

 

"늦어서 죄송해요."

그런 그녀의 곁에 있던 금발 머리의 소녀가 제 아버지를 발견하고 살짝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돌아가기로 한 시간까지 가지 않았으니 큰 오라버니가 와 있을까 싶었는데 아버지가 와 있었던 것이다.

 

"아니, 괜찮다. 그럼 이만 돌아갈까?"

그는 상냥한 아버지였고, 이 정도 일로 아이들을 야단치지는 않았다. 금발의 소녀는 피나르핀의 딸인 아르타니스 네르웬이었다.

 

"네르웬, 다음에도 또 놀자."

아레델이 사촌 자매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이릿세, 너는 먼저 좀 씻고 오거라."

기운차게 아버지의 품에 뛰어든 덕분에 핀골핀의 옷 위에까지 잡초 부스러기가 떨어져있었다. 핀골핀은 딸의 머리에 붙어 있는 나뭇잎을 떼어내었다.

 

". 금방 올게요."

생긋 웃어 보인 소녀는 욕실 쪽으로 향했다. 여전히 빠른 걸음이었다.

 

"저도 손이라도 좀 씻고 올게요."

아르타니스도 이미 욕실 쪽에 거의 다다른 사촌 자매를 따라가 버렸고, 거실에는 다시 핀골핀과 피나르핀만이 남게 되었다.

 

"형님, 충고 하나 드려도 될까요?

이번에는 제대로 핀골핀 옆에 앉은 피나르핀이 입을 열었다.

 

"충고? 그래, 어디 들어보지."

피나르핀 쪽에서 먼저 핀골핀에게 말을 거는 일은 드물었다. 그는 대개 형의 말을 조용히 듣고, 한 두 마디를 덧붙이는 정도였다. 과묵한 편은 아니었지만, 스스로의 주장을 강하게 세우거나 남을 가르치려 드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런 동생 쪽에서 먼저 충고라는 말을 꺼내다니, 조금은 놀라웠다.

 

"페아나로 형님을 더 이상 가까이 하지 않는 게 좋을 겁니다."

상당히 의미심장한 말이었다. 티리온에서 핀웨의 장남인 페아노르와 차남인 핀골핀의 사이가 나쁘다는 것을 모르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그는 가까이 하지 말라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나도 형님이 좋은 건 아니다. 다만,"

핀골핀은 순간 당황했지만, 겉으로 내색은 하지 않았다. 눈치가 빠른 편인 건 알고 있었지만, 자신과 형님의 관계를 어느 정도 알고 있다는 듯한 동생의 말은 다소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 정도로 티를 내고 다닌 건가 싶어 잠시 기억을 헤집어 봤지만, 남들 앞에서 크게 문제가 될 만한 행동들을 한 적은 없는 것 같았다.

 

"다만? 형님도 다른 요정들처럼 페아나로 형님의 재능에 반하기라도 하신 겁니까?"

물론, 그럴 리가 없었다. 핀골핀도 이복형제인 페아나로의 재능은 인정하고 있었지만, 부러워 해 본적은 없었다. 제각기 다른 재능을 가지고 있고, 누구에게라도 남이 가지고 있지 못한 재능 하나 정도는 가지고 있으니 남의 재능을 질투해 본 적은 없었다. , 그는 재능만으로 상대에게 빠져들 정도로 단순하지 않았다.

 

"그럴리가. 단지, 분란을 일으키고 싶지 않을 뿐인 거다."

이 말은 어느 정도 사실이었는데, 그가 행여 순순히 페아노르의 부름에 따르지 않으면, 집 안에 큰 소리가 나는 것은 예사였다. 그렇다고 핀골핀이 형의 말을 전적으로 따르는 것은 아니었지만, 최소한 불렀을 때 가지 않으면, 며칠이고 싸늘한 시선을 마주해야했다. 그것마저도 그에게는 크게 중요한 것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아버지인 핀웨에게만큼은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았다. 이복형제들의 우애를 바라고 있는 핀웨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다행이지만요."

형의 답을 들은 피나르핀은 온화하게 웃었다. 형제들 중에서 가장 어머니를 닮은 그는 페아노르도 핀골핀도 짓지 못하는 환한 웃음을 짓고는 했다. 그러나 그의 웃음은 어머니인 인디스의 웃음과는 약간 달랐다. 깊이를 알 수 없는 웃음이었다. 핀골핀마저도 동생이 그렇게 웃을 때면,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기 어려울 때가 있었다.

 

"할 말은 그게 전부인 게냐?"

", 간만에 차라도 한 잔 하시겠습니까? 얼마 전에 마셨던 것이 맛이 아주 좋던데."

"괜찮다. 그나저나 핀데카노 이 녀석은 일찍 들어오라고 누누이 일렀는데."

별 싱거운 녀석 다 보겠다는 표정으로 핀골핀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차 한 잔 마시는 게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지만, 지금은 안 될 것 같았다. 차남은 평소처럼 서재에 틀어박혀 있었고, 막내는 뒤뜰에서 놀고 있고, 딸도 집에 들어왔는데, 장남은 아직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그나마 아레델이야 집에 들어오기라도 하지만, 장남은 아예 밖에서 자고 돌아오는 일도 있었다.

 

"페아나로 형님 저택에 있지 않겠습니까."

핀골핀의 장남인 핀곤이 페아노르의 장남인 마에드로스를 얼마나 따르는 지는 모든 가족들이 잘 알고 있었다. 핀골핀도 보나마나 아들이 사촌형 곁에 붙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왜 그렇게 쫓아다니는 지 가끔은 아버지인 그도 이해가 가지 않을 지경이었다.

 

"그래, 그렇겠지. 제 발로 올 생각을 안 하니 나도 아들 녀석을 데리러 가야겠군."

"형님 저택에 가시렵니까?"

"그래, 나는 나가봐야 하니까, 기다리지 말고. 네르웬이 오면, 데리고 먼저 돌아가거라."

외투를 걸어둔 쪽으로 가려던 핀골핀이 걸음을 멈추었다. 피나르핀의 손이 그의 팔을 붙잡은 탓이었다. 어느 새 일어선 동생은 핀골핀 옆으로 바짝 다가와 있었다.

 

"염려가 되어 그렇습니다."

그는 여전히 얼굴에서 웃음을 거두지 않은 채였다.

 

"불길입니다. 페아나로 형님은 언젠가는 제 스스로도 태워버리고 말 겁니다. 곁에 계속 있다가는 날개가 타들어가는 줄도 모르는 불나방 꼴이 되겠지요."

그렇게 말하는 동생은 상당히 낯설었다. 어딘가 이복형제를 떠오르게 했지만, 지나친 상상이라 생각한 핀골핀이 동생의 손을 떼어냈다.

 

"네가 상상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다. 형님에게 휘둘릴 생각은 없으니까."

그는 외투 걸이의 가장 위쪽에 걸려있던 망토를 집어 들었다. 곧 식사를 해야 할 테니 얼른 큰아이를 데려와야 했다.

 

 

복흑 피나르핀을 써 보려다가 장렬하게 실패했습니다. 역시 이 형제는 재육한 뒤의 일을 쓰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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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코르x핀골핀)

썰들 2014. 3. 15. 17:20

나무의 시대 1490년 경 (티리온, 멜코르의 저택)

 

 

(멜코르x핀골핀)

 

 

발라 멜코르, 그는 가까이 하고 싶지 않은 자였다. 웃음을 지우는 법 없는 사내였지만, 아버님과 형님의 주위를 얼쩡거리는 게 탐탁지 않았다. 그런 자가 제 발로 내 저택까지 찾아온 것이었다. 아내에게 손님이 왔다는 이야기를 듣고 응접실로 내려가자 푸른 로브를 차려입은 그가 있었다.

 

"놀로핀웨공께서도 제 저택에서 열리는 무도회에 참석해 주시겠습니까?"

 

안부 인사를 나누고 싶은 생각은 없어 바로 용건을 말해달라고 했다. 무슨 말을 하려 왔나 했더니 곧 그의 저택에서 무도회가 열린다고 했다. 남들을 만나는 게 싫지는 않았지만, 춤을 추는 자리에는 흥미가 없었다. 더욱이 별다른 친분 관계도 없는, 외려 피하고 자임에야. 그의 초대를 거부하는 건 당연한 귀결이었다.

 

"그런 자리에는 제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나름대로 돌려 말했지만,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가 내 손을 맞잡아 왔다. 상당히 무례한 행동이었다. 상대방의 동의도 없이 가족이나 친척도 아닌 자가 손을 붙잡다니,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러나 그가 바로 입을 열었기 때문에 나는 잠시 동안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었다.

 

"놀도르 대왕이자 놀로핀웨공의 부친이신 핀웨님과 형님 되시는 쿠루핀웨공도 함께 하는 자리인데, 정말로 오실 생각이 없으신가요."

 

어떻게 구워삶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버지에 까다로운 이복형까지도 참여하는 자리인 모양이었다. 순간 마음속에 작은 망설임이 생겼다. 무도회라. 어쩌면, 그리 나쁘지 않을지도 몰랐다. 아버지가 계시는 자리라면, 평소의 모습이 아니라 한껏 차려입은 형님을 볼 수 있을지도 몰랐다. 마주쳐봤자 형님은 빈정거릴 뿐이겠지만, 어쩐지 기대가 되었다. 어딘가 이상해진 것 같았다. 돌아오는 것은 거친 대우뿐이었는데도, 그를 머릿속에서 내보낼 수는 없었다.

 

"아버님과 형님까지 참석하시는 자리란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변변치 않은 자의 초대인데, 기꺼이 응해주셔서 그야말로 감사할 따름이지요."

 

태연스러운 태도로 보건데 그의 말은 거짓이 아닌 것 같았다. 제 아무리 발라라도 핀웨 대왕과 페아나로 형님의 이름을 들먹이면서까지 거짓을 고할 리는 없었다. 그렇게 까지 해 가며, 나를 그의 저택에 부를 이유는 더욱이 없었다. 잠시 고민을 했지만, 이미 답은 나와 있었다. 보나마나 멜코르는 막내인 피나르핀에게도 갈 텐데, 동생의 성격상 상대의 청을 들어줄 가능성이 높았다. 무리한 것도 아니니 더욱 그럴 것 같았다. 아버지에 형제들까지 모두 참석하는 자리에 나만 가지 않는 것은 자연스럽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저도 빠질 수는 없겠군요."

 

내키지는 않았지만, 어차피 그를 보기 위해 가는 자리가 아니었다. 결정을 하고나자 마음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아버지 곁이라면, 얌전한 모습으로 있어줄 것이다. 말끔히 정돈된 머리카락과 꼭 맞춘 듯한 예복을 갖춰 입은 형의 모습을 떠올리자 이상할 정도로 두근거렸다. 성격과는 별개로 아만에서 가장 아름다운 엘다르라는 불리는 나의 이복 형제였다.

 

"놀로핀웨공께서도 자리를 빛내주시겠다니 영광입니다."

 

내 손을 놓은 그는 과장스러운 동작으로 예를 표했다. 지나치다 싶을 정도였다. 석연치 않은 기분이 들었지만, 일단 의심의 마음은 접어두기로 했다. 잠시 자리를 지키고 있는 정도로 큰 일이 일어날 리는 없었다. 여차하면 인사만 하고, 바로 남들 속으로 숨어버리면 되었다.

 

무도회 날이 되어 멜코르의 저택으로 향하니 모두가 약속이라도 한 듯 가면을 쓰고 있었다. 참석자에서부터 시종들에 이르기까지. 색색깔의 가면들이 가득한 저택의 풍경은 무척이나 기이한 것이었다. 얼굴 표정을 읽을 수 없게 되었기 때문에 더 그럴지도 몰랐다. 모두가 익숙한 자들일 텐데도 전혀 익숙하지가 않았다. 그 와중에 나만이 가면을 준비해가지 못했다. 미리 전갈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정식으로 보내진 초대장에는 특별히 준비해 오라고 한 것이 없었다. 저택의 주인과 인사를 나누고, 여분으로 준비되었던 가면을 받았다. 흰색 가면에는 금박 장식으로 장식이 되어있었다. 요란스러운 장식이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다행히도 거울에 비추어 보니 이상하게 보이지는 않았다. 사방을 둘러보니 내 가면과 같은 가면은 하나도 없었다.

 

형은 아버지의 옆에 찰싹 달라붙어있었다. 내 앞에 있을 때와는 다르게 웃음 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그 웃음이 소름끼치게 들렸다. 붉은색 가면에 가려져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그가 무척이나 기뻐하고 있다는 건, 확실해보였다. 무도회였지만, 춤은 추지 않았다. 가면을 쓰고 있어 다행인 점도 있었다. 얼굴을 그대로 드러낸 자리라면, 왕의 차남이라는 위치 때문에 내키지 않아도 몇 명의 손은 잡아야 했을 것이다. 정성껏 준비된 음식들이 가득했지만, 좀처럼 손이 가지 않았다. 와인이 담긴 잔이 눈에 들어왔다. 우두커니 서있기만 하려니 다리가 아파서 구석진 의자에 잠시 앉았다.

 

"아라카노."

 

와인을 홀짝이고 있으려니 형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또 무슨 시비를 걸러왔나 싶었다. 저택에 들어오는 내 모습이 거슬렸을지도 몰랐다. 돌이켜보면, 상대가 누구인지 확인하지도 않고 자리에서 일어선 게 문제였다. 아차하는 순간에 계단 아래의 어두운 틈으로 끌어당겨졌고, 상대가 재빠른 동작으로 가면을 벗겨냈다. 그리고 내 입술에 다른 이의 온기가 겹쳐졌다. 별다른 동작도 없이 천천히 맞대고만 있었다. 평소처럼 거칠게 깨물지 않는 게 수상했다.

 

다정한 입맞춤은 기대한 적도 없었지만, 이복형은 언제나 상처를 내려는 듯 사납게 입술을 맞대어 왔다. 그것은 침대 위에서도 그리 다르지 않았다. 가끔은 이렇게 계속 깨물리다가는 입술이 남아나지 않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입을 맞추고 싶으신 겁니까, 제 입술을 깨물고 싶으신 겁니까."

 

한 번은 불만섞인 목소리로 항의해 본 적도 있었더랬다. 말하자마자 바로 후회하고 말았지만.

 

"아내에게처럼, 여자들에게 하는 것처럼 맞춰주랴?"

 

지독히도 쌀쌀맞으면서도, 눈을 떼기가 힘들 정도로 아름다운 조소가 돌아왔다. 그게 쿠루핀웨 페아나로였다.

 

"이제 당신은 제 마법에 걸렸습니다."

 

입술이 떨어졌다. 내 귀에 들려온 건, 특이한 목소리였다. 아만의 어디에서도 들어보지 못한 목소리였다. 입에서 나오는 것이라 생각되지 않는 독특한 음색이었다. 상대는 내가 쓰고 있었지만, 이제는 그의 손에 들려있는 가면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대리석 바닥이 조용히 울렸다. 가면을 줍기 위해 허리를 구부렸는데, 밝은 곳에서 보니, 상대의 얼굴에 씌워져 있는 가면은 아까 보았던 형님의 가면이 아니었다.

 

새카만 가면에는 은박 장식이 요란했다. 문 앞에서 나를 맞이하던, 저택의 주인이 쓰고 있던 가면이었다. 내게 주어진 가면과는 색만 다를 뿐 동일한 형태였다.

 

"당신과 저는 언젠가 또 만나게 될 겁니다. 이 땅이 아닌 다른 곳에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아라카노."

 

그가 흐트러진 가면을 고쳐 썼다. 나는 그가 지나간 자리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쫓아가서 따지고 싶지는 않았다. 어안이 벙벙해서 왜 그의 저택에 찾아왔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였다. 입술에는 아직도 와인의 포도향이 어른거렸다. 그가 발리노르에서 사라진 것은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서 였다.

 

 

뜬금없습니다. 멜코르와 핀골핀이 조우하는 명장면이 있는데 왜 엉뚱한 장면을 써 버리게 되었는지는 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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