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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마릴리온/글로르핀델x투르곤] 알쿠알론데 01 (수정 中)

 

 

짐을 푼 글로르핀델과 투르곤은 저택의 접견실로 향했다. 1층의 오른쪽에 위치한 접견실 문은 이미 열려있었다. 그들이 들어가자 올웨가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반갑게 맞아주었다. 허리 아래까지 늘어뜨린 치렁치렁한 은발이 샹들리에의 빛을 받아 반짝거렸다. 그는 창밖으로 보이는 바다의 빛깔을 닮은 푸른색의 옷을 입고 있었고, 이마에는 사파이어가 여러 개 박힌 은색의 서클렛을 쓰고 있었으며, 팔에는 파란실로 소라고둥 무늬가 수놓아진 흰색의 기다란 숄을 걸치고 있었다. 실로 바다 요정인 텔레리의 군주다운 눈부시고 위엄 있는 모습이었다.

 

"어서 오십시오. 또 뵙는군요. 놀로핀웨의 아들 투르카노."

 

올웨의 딸인 에아르웬이 투르곤의 숙모였고, 에아르웬의 장남인 핀로드와 친해서 소년도 알쿠알론데에 위치한 올웨의 저택에 몇 번 와 본 적이 있었다. 그 외에도 글로르핀델과 단 둘이 왔던 적도 있었다. 군주는 친우인 핀웨의 손자 투르곤의 얼굴이 이미 익숙했다. 기억력이 좋은 편이기도 했고, 알쿠알론데에 찾아오는 놀도르가 드물기 때문인 것도 있었다. 같은 요정이기는 했지만 놀도르와 텔레리의 외모는 꽤 달랐기 때문이다.

 

", 당분간 군주님의 저택에서 신세를 지게 되었습니다."

 

투르곤은 올웨를 향해 정중하게 인사를 했다. 텔레리의 군주가 아니더라도 투르곤에게는 그가 사실상 조부 뻘이었으며, 식객처럼 그의 저택에 머무르는 것을 허락해 준 것에 대한 감사를 표하는 것이었다. 잠자코 듣고 있던 올웨가 소년의 손을 잡았다. 그의 손은 검조차 몇 번 잡아보지 않아 소년만큼이나 섬세하고도 매끄러웠다.

 

"어려워말고 편히 지내길. 그대의 조부와는 막역한 사이이니 조부처럼 대해도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폐하. 모쪼록 앞으로 이곳에 머무르는 동안 잘부탁드리겠습니다."

 

그의 말에 투르곤은 다시 한 번 인사를 했다. 놀도르의 왕자 중 한 명인 투르곤은 텔레리 군주인 올웨의 저택으로 보내지게 되었다. 핀웨는 자손들이 바냐르나 텔레리와도 잘 지내길 바랐고, 막내인 피나르핀은 아내인 에아르웬이 올웨의 딸이었으니 그의 자식들은 조부의 저택을 자주 방문했지만, 장남인 페아노르는 놀도르를 제외하면 전혀 관심이 없었으며 오히려 가까이 하기를 꺼리는 편이었다.

 

텔레리를 싫어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텔레리에 대해 잘 알고 있지도 않은 핀골핀과 그의 자식들이었다. 마침 핀골핀의 차남인 투르곤은 이런 저런 공부를 하는 것을 상당히 좋아했기 때문에 유학을 겸해서 알쿠알론데에 있는 올웨의 저택으로 오게 되었다. 올웨의 자식들은 모두 장성하여 출가를 했고, 아내는 장남의 저택에 머무르고 있었기 때문에 올웨는 저택에 혼자 살고 있었었는데, 종종 가족들이 저택에 들르기 때문에 외롭지는 않았지만, 친한 친구인 핀웨의 손자 한 명 정도를 자신의 저택에 살게 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매번 올 때마다 느꼈지만, 티리온과는 정말 달라서 신기합니다."

"그렇지요. 이 곳은 항구 도시니까 티리온과는 많이 다를 겁니다."

 

올웨는 투르곤을 볼 때면, 가운데 땅에서 지내던 시절의 핀웨를 떠올렸다. 소년은 요정 치고는 특이하게도 단발머리를 하고 있었는데, 핀웨도 소년 시절에 머리를 짧게 자르고 다녔던 것이다. 그는 소년보다도 더 짧게 목덜미가 다 드러날 정도로 짧은 머리였는데, 활동하기 불편하다는 이유에서였다. 어깨 위에서 살랑거리는 소년의 머리카락을 보면, 언뜻 친우의 그림자가 소년의 위로 스쳐지나가는 것 같기도 했다. 소년의 아버지인 핀골핀은 핀웨를 가장 닮은 자식이었으며, 소년은 그의 아버지를 많이 닮았으니 올웨가 그렇게 느낀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글로르핀델 여기 있는 것들과 저기 있는 것들을 가져가면 돼. , 그리고 그것도 들어 줘."

"투르카노, 조금씩 가져가서 보면 안 될까요? 아무리 그래도 이건 좀 많은데."

"안 돼. 같이 보는 게 더 낫단 말야. 여러 번 왔다 갔다 하는 게 더 귀찮을 것 같은데."

 

아직 성년도 되지 않은 왕자를 홀로 먼 곳에 보낼 수는 없어서 황금꽃 가문 영주의 외동아들인 글로르핀델이 호위를 겸해 보내졌다. 원래라면 성년도 아닌 투르곤을 다른 군주에게 보내는 것은 예의에 어긋나겠지만, 소년은 나이에 비해 상당히 어른스러운 편이었고, 올웨가 핀웨와 그 정도로 친밀한 사이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글로르핀델은 투르곤을 따라오게 되는 것을 상당히 기뻐했다. 그는 함께 보내지지 않았으면 스스로 따라나서겠다고 했을 정도로 소년을 아꼈다. 핀골핀 가문 아이들의 검술 스승이었지만, 그는 장남인 핀곤이나 장녀인 아레델보다 차남인 투르곤을 더 좋아했다. 고명딸인 아레델은 글로르핀델도 상대하기 힘들 정도로 말괄량이였고, 핀곤은 사촌형인 마에드로스 뒤를 쫓아다니느라 핀골핀 저택에서는 통 얼굴을 보기도 힘들 정도였으니 자연스레 투르곤과 친하게 지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물론 그 이유밖에 없는 건 아니었지만 말이다.

 

알쿠알론데에는 커다란 장서관이 있었다. 텔레리들이 오랜 세월동안 불러온 자신들의 노래를 아만 땅에 와서 책으로 만들어 냈고, 그것들은 장서관을 가득 채울 정도로 많았다. 마이아 옷세와 우이넨이 요정들에게 알려준 노래도 그 중에 있었다. 티리온까지는 전해지지 않은 수많은 전승들이 그곳에 있었다. 탐구욕이 강한 투르곤에게는 하루가 모자랄 정도였다. 덕분에 올웨의 저택까지 무수한 책들을 나르게 되는 것은 글로르핀델의 몫이었다. 투르곤에게 손과 발이 없는 것도 아니었지만, 또래들보다 키도 작고 힘도 약한 소년은 그날 보려는 책을 다 가져가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덕분에 가끔 글로르핀델은 호위로 와 있는 건지 짐꾼으로 와 있는 건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할 정도였다. 그래도 앞장서서 가던 소년이 미안한지 가끔씩 뒤돌아보며 미소를 지을 때면, 들고 있는 책들이 깃털처럼 가볍게 느껴질 정도였다.

 

"고마워, 글로르핀델."

"고마우면 다음에는 얇은 책들만 골라주세요."

 

간신히 저택의 방에 도착해서 글로르핀델이 책상 위에 책을 올려다 주자 발돋움을 한 투르곤이 그의 이마에 입술을 맞추었다. 소년이 다시 땅에 내려섰지만, 그가 소년을 꼭 껴안았다. 바닷바람이 소년에게서 느껴지는 것 같았다. 글로르핀델은 청명하면서도 맑은 푸른 빛깔인 소년의 눈을 바라보더니 그도 소년의 이마에 입술을 떨어트렸다. 그에게는 소년이 무엇보다도 사랑스러웠고, 곁에서 떼어놓고 싶지 않았다.

 

그의 품에서 벗어난 소년이 바로 책을 펼쳐 들었다. 글로르핀델은 소년을 남겨두고 방을 나왔다. 투르곤은 이렇게 한 번 책을 읽기 시작하면, 적어도 저 책들의 반 정도는 읽기 전까지는 그를 상대해 주지 않았으니, 그는 그 때까지 연무장에라도 가 있을 생각이었다. 텔레리들은 무술 연마에 놀도르처럼 공을 들이지는 않았지만, 알쿠알론데의 한 구석에도 자그마한 연무장이 자리 잡고 있었다.

 

텔레리는 검보다는 활을 즐겨 사용하는지라 연무장에는 과녁들이 주르륵 늘어서 있었다. 글로르핀델은 이미 올웨에게 연무장을 출입할 수 있게 허가를 받은 뒤였다. 원래라면 놀도르인 그가 텔레리들의 연무장에 출입해서는 안 되었겠지만, 비밀을 누설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받고 드나들게 된 것이었다. 올웨는 무예를 단련하는 데에는 큰 관심이 없었지만, 그의 청은 흔쾌히 들어주었다. 투르곤이야 텔레리의 문화를 배우러 왔다지만, 글로르핀델은 그런 데에는 별다른 흥미가 없었고, 특별하게 할 만한 일도 없었던 것이다.

 

화살이 허공을 가르는 소리들이 요란했다. 글로르핀델은 활보다는 검을 쓰는 것에 익숙했지만, 그렇다고 활솜씨가 좋지 않은 건 아니었다. 거의 백발백중에 가까운 솜씨였다. 티리온에 있는 친우인 에갈모스와 두일린이 훌륭한 궁사인지라 그들과 어울리다 보니 글로르핀델도 자연스레 활솜씨를 연마하게 되었던 것이다. 시시콜콜한 내기를 하는데 거듭해서 지나보니 자존심이 상한 그가 이를 악물고 연습을 했고, 최근에는 두 친구와 엇비슷할 정도로 실력을 향상시킬 수 있었다. 두일린과 에갈모스에는 아직 못 미쳤지만, 그래도 이제는 매번 지지는 않을 정도가 되었다.

 

그는 활을 반납하고 연무장에서 나오면서 투르곤도 데려와야 겠다는 생각했다. 검술이야 늘 가르쳐 주고 있었지만, 그가 활을 능숙하게 다루게 된 것은 얼마 되지 않은 일이라 아직 소년에게 가르쳐 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다른 지식들은 빠르게 습득하는 편이었지만, 몸으로 하는 것은 서툰 투르곤이라 쩔쩔 맬 것이 눈에 선했다. 그래도 그런 모습들이 더욱 귀여울 것이다. 글로르핀델은 당장이라도 소년을 데려오고 싶었지만, 소년은 보나마나 퉁명스러운 반응을 보일 것 같았다. 소년을 잘 구슬러서 데리고 와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그는 새하얀 항구 도시의 거리를 걸었다. 거리를 걷는 요정들의 복장은 놀도르보다 다소 가벼웠다. 선원들도 막 배에서 내려서 거리에 보였는데, 그들은 바닥까지 끌릴 정도로 길게 내려오는 놀도르의 전통 예복들과는 거리가 먼 간소한 옷차림을 하고 있었다.

 

"투르카노, 설마 아까 제가 나갔을 때부터 계속 그대로 있었던 겁니까?"

". 신기한 책들이 정말 많은 걸. 그나저나 생각보다 금방 돌아왔네."

 

투르곤은 방에 들어온 글로르핀델에게 시선도 돌리지 않은 채 계속 책만 읽었다. 이대로는 손에 들린 책을 다 읽고도 옆에 놓인 책을 또 집어들 것 같았다. 그는 의자에 있는 소년을 안아들었다. 손에 들려있던 책이 바닥에 떨어져서 책장들이 팔랑거리며 넘어갔다. 글로르핀델은 소년을 침대 위에 내려주었다. 그리고 그도 침대 위로 올라갔다. 두 명의 무게가 실린 침대가 푹 내려앉았다. 방에는 두 개의 침대가 있었지만, 매일 팔베개를 하고 소년을 재워 준다는 게 그도 그대로 잠이 들어 버릴 때가 많았고, 사실상 사용하는 것은 한 쪽 침대 밖에 없었다. 이번에 글로르핀델이 소년을 내려둔 쪽은 잘 사용하지 않는 침대 쪽이었다. 구석진 곳에 있는 침대와는 다르게 책상과는 가까워서 멀리 가지 않고 그 위에 소년을 내려놓은 것이었다.

 

"글로르핀델, 뭐 하는 거야. 책도 덜 읽었는데."

"제가 오늘도 이럴 줄 알았습니다. 책만 읽으러 여기 오신 겁니까?"

 

갑자기 침대 위에 눕혀진 소년이 그에게 불만스러운 시선을 향했다. 막 재미있어 지던 부분이었는데 글로르핀델 때문에 책을 마저 읽지 못하게 된 것이 마음에 들지 않은 모양이었다. 글로르핀델은 소년이 이럴 거라 생각은 했지만, 예상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는 소년의 행동이 야속하기만 했다. 곧 이어 싱긋 웃은 그가 소년의 귓가에 바람을 불어넣었다. 갑자기 뜨거운 바람이 귀에 스쳐서 소년의 얼굴에 당황하는 표정이 지나갔다. 뭐라 말을 하기도 전에 글로르핀델이 투르곤의 얼굴에 입맞춤을 퍼부었다. 이마에, 눈두덩이에, 눈가에, 콧날에, 뺨에, 턱에, 그리고 마지막으로 입술까지. 밀어내지도 못하고 그대로 가만히 그의 입맞춤을 받던 소년은 아쉬운 듯 한참이나 소년의 입술을 물고 있던 글로르핀델이 떨어져 나가고 나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이제 제 안의 알쿠알론데는 이런 곳입니다. 

Posted by ♡슈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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