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근한 수위 묘사 주의
(핀웨x핀골핀)
핀웨는 언젠가부터 그를 애써 쫓으려 하지 않는 강한 눈빛에 더 끌리게 되었다. 장남은 늘 그의 사랑에 목말라 있었지만, 그는 때로 맹목적일 정도로 자신만 바라보는 아들이 부담스러울 때도 있었다. 가끔은 페아노르의 불길에 자신마저 타 버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핀골핀은 그렇지 않았다. 물과도 같았다. 겉으로 보기에는 차갑게 보였지만, 주변의 것들을 부드럽게 감싸 안는 모습이 핀웨와 상당히 닮아있었다.
"오히려 네가 더 맏아들 같구나."
핀웨가 옆으로 다가온 차남을 보며 웃었다. 시끄러운 자리는 싫다며 장남은 금방 저택으로 돌아가 버렸다. 아버지 곁에 있는 것은 좋아했지만, 귀찮게 들러붙는 다른 요정들이 성가셔서 견딜 수가 없었던 것이다. 아버지가 붙잡아 주길 바랐지만, 핀웨는 아들을 붙잡지 않았다. 다른 자리였다면 몰라도 신년을 기념하는 축제였던 것이다. 티리온의 왕인 핀웨의 저택에서 열린 신년제는 상당히 성대했다. 바냐르와 텔레리까지 함께하는 자리였다. 놀도르만의 무도회였다면 모를까 놀도르의 군주인 핀웨가 자리를 뜨는 것은 격식에 어긋났다. 핀골핀은 핀웨의 칭찬에 정중하게 고개를 숙여 답했다. 흠잡을 데 없는 왕자다운 예였다. 장성한 왕자의 외모는 날카로운 외모의 제 형과는 거리가 멀었다. 야무지면서도 위엄 있는 얼굴이었다.
"형님은 다시 오실 생각이 없으신가 봅니다."
"그래, 나도 좀 술이 과한 것 같구나."
새로 수확한 술의 맛이 훌륭한데다가 장남이 곁에 있지 않아 대신 술을 받아주지도 않았다. 페아노르도 술이 강한 편은 아니었지만, 아버지가 취하는 것은 보고 싶지 않다며 핀웨에게 향하는 술잔을 다 제가 빼앗아가 마셔버렸다. 그러다가 핀웨보다 먼저 저택으로 보내지는 일도 있었다. 가지 않겠다며 고집을 부리는 것을 핀웨가 직접 데려다 줄 때도 있었다. 아무튼 핀웨만을 향해 건네진 술잔들 덕분에 그는 꽤 과음을 한 뒤였다. 술에는 강한편이라 할 수 있었지만, 오늘은 슬슬 취기가 돌고 있었다.
"잠시 쉬시지요. 이곳에는 제가 있겠습니다."
"아니다, 조금만 더 있다가 함께 가는 게 좋겠다."
핀골핀도 핀웨의 모습을 보니 붉어진 얼굴을 흘깃 보더니 침실로 모셔가려했다. 웬일인지 핀웨는 그런 아들의 청을 물리쳤다. 순순히 혼자서 방으로 들어갔으면 일이 달라졌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결국 몇 잔을 더 받아 마시고 나서야 핀골핀의 부축을 받아 안방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축하주를 올리는 자들이 계속 그의 곁으로 다가왔다. 옆에서 핀골핀이 말리려고 했지만, 흥이 오른 핀웨는 그에게 술을 따르는 자들을 말리지 않았다. 아내인 인디스는 신년을 맞아 친정에 들렀다 올 예정이어서 침실은 텅 비어있었다.
"다른 분들께는 제가 인사드리겠습니다. 이만 주무십시오."
핀웨의 상태를 보자 영 안 되겠다 싶었던지 핀골핀이 아버지를 침대 쪽으로 데려갔다. 그러나 오히려 침대 위에 눕게 된 것은 그였다. 당황해서 일어서려 했지만, 취해있는 핀웨의 힘은 평소보다 강했다. 놀도르 대왕이니만큼 무력에 그리 자신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티리온의 대왕이라는 위치 때문에 평화로운 아만에서는 그 힘을 드러내 사용할 일이 없기는 했지만, 가운데 땅에 있었을 때는 그도 상당히 무용을 뽐내었다.
"아버지? 많이 취하셨나봅니다. 전 어머니가 아닙니다."
"아들아."
기괴한 구도였다. 차라리 그를 지독히 미워하는 이복형제라면 모를까, 핀웨는 아이들에게 손찌검 한 번 하지 않는 다정한 아버지였다. 움직일 수도 없게 아들의 어깨를 압박하는 핀웨의 모습을 보며, 핀골핀은 마치 자신이야말로 술에 취해 꿈을 꾸는 것인가 의심하고 싶어질 정도였다. 술에 취한 아버지가 그를 어머니와 착각이라도 했나 싶어 입을 열었지만, 핀웨는 똑똑히 핀골핀을 아들이라고 호칭했다.
"너는 나를 많이 닮았다."
술에 취해 있었지만, 핀웨의 목소리만큼은 또렷했다. 유창한 목소리는 백성들 앞에서 연설을 하는 목소리 그대로였다. 가운데 땅의 타탸르가 그를 따라 아만에 오게 만들었을 때와 같이 듣는 자를 잡는 힘이 있었다. 듣는 것만으로도 설득이 될 것 같은 어찌 보면 마력을 담은 것 같은 목소리였다. 핀골핀은 핀웨의 상태가 평소와는 다르다는 것을 알면서도 목소리에 눌리기라도 한 듯 가만히 있었다.
"오히려 페아나로, 그 아이보다도 닮았지."
그의 손이 아들의 뺨을 향해 다가가다가 멈추었다. 멈추었던 손이 아들의 머리로 향했고, 그의 손가락 틈새로 핀골핀의 머리카락이 삐져나왔다. 페아노르는 아버지와 흡사한 외모인 핀골핀의 외모를 몹시 못마땅하게 여겼다. 그 정도로 그들은 닮아있었다. 그의 차남에게서는 어머니인 인디스의 모습을 찾아내기 힘들 정도였다. 누구도 부자 사이라는 것을 의심치 않을 정도로 비슷했다.
"의지가 되는 아들이지. 불안해서 품 안에서 보듬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페아나로와는 달라."
핀웨의 목소리는 점점 내리깔리고 있었다. 빛과도 같아 보이는 그였지만, 속마음마저 늘 그런 건 아니었다. 웃고 있는 뒤에는 남들이 모르는 아픔도 상처도 있었다. 소중한 친우는 가운데 땅에 남아 있어 그가 있는 곳으로 오지 못했다. 장남을 낳아 준 아내는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곁을 떠나버렸다. 지금의 아내인 인디스를 제외하면, 누구도 그의 상처를 보듬어 주는 이가 없었다. 그럼에도 그가 빈 구멍을 모두 메울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엘웨나 미리엘의 이야기를 인디스에게 아무렇지 않게 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아들, 아버지의 위안이 될 생각은 없니?"
웃음. 아들에게, 아내에게 지어보이던 자애로운 웃음이었으나, 핀골핀에게는 그것이 이복형의 싸늘한 시선보다도 더 무겁게 다가왔다. 피할 수가 없을 것 같았다. 피해서도 안 될 것 같았다. 거부하면, 정말로 망가져 내리는 아버지를 볼 것만 같았다. 그러한 잠시 동안의 망설임에서부터 모든 것이 시작되었다. 뒤늦게 그와 아버지에게 있었던 일을 알게 된 그의 형은 예전보다 더욱 그를 싫어하게 되었고, 그의 아버지는 여전히 그의 형을 사랑했으며, 그럼에도 그를 의지했다. 가혹할 정도로 일그러진 관계였다.
※
핀웨 대왕님 왜곡해서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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