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격 붕괴 주의.
(피나르핀x핀골핀)
피나르핀이 핀골핀의 저택에 오게 된 건 막내딸인 아르타니스를 데려가기 위해서였다. 오랜만에 동갑내기인 사촌 자매 아레델과 놀겠다고 하더니 오기로 한 시간이 지났는데도 돌아오지 않았다. 여동생을 끔찍하게 아끼는 장남이 데려오겠다고 하는 걸 그가 직접 데리러 가겠다며 만류했다. 친형제인 핀골핀에게 할 말도 있었으니 겸사겸사 가 볼 생각이었다. 예상했던 대로 핀골핀의 저택에도 딸의 모습은 보이지 없었다. 보나마나 아레델이 이리저리 끌고 다니다 보니 시간이 가는 줄도 몰랐을 것이다.
"그렇군요. 그럼 이릿세와 네르웬이 올 때까지 기다려야겠습니다."
"마음대로 해. 슬슬 돌아올 때도 되었으니까."
그가 핀골핀의 옆에 있는 의자에 막 앉으려 했을 때, 밖에서 아이들의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빠르게 달려오는 발걸음과 천천히 걸어오는 발걸음, 두개의 소리가 겹쳐서 들렸다.
"아버지, 저 왔어요!"
얼굴에 흙을 잔뜩 묻힌 흑발의 소녀가 핀골핀의 품에 안겼다. 나갈 때 까지만 해도 멀쩡했던 옷은 얼굴처럼 흙투성이가 되어있었다. 핀골핀의 딸인 아레델은 늘 그런 식이었다. 옷을 버리는 것도 신경 쓰지 않고 남자 아이들처럼 뛰어놀고는 했다.
"늦어서 죄송해요."
그런 그녀의 곁에 있던 금발 머리의 소녀가 제 아버지를 발견하고 살짝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돌아가기로 한 시간까지 가지 않았으니 큰 오라버니가 와 있을까 싶었는데 아버지가 와 있었던 것이다.
"아니, 괜찮다. 그럼 이만 돌아갈까?"
그는 상냥한 아버지였고, 이 정도 일로 아이들을 야단치지는 않았다. 금발의 소녀는 피나르핀의 딸인 아르타니스 네르웬이었다.
"네르웬, 다음에도 또 놀자."
아레델이 사촌 자매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이릿세, 너는 먼저 좀 씻고 오거라."
기운차게 아버지의 품에 뛰어든 덕분에 핀골핀의 옷 위에까지 잡초 부스러기가 떨어져있었다. 핀골핀은 딸의 머리에 붙어 있는 나뭇잎을 떼어내었다.
"응. 금방 올게요."
생긋 웃어 보인 소녀는 욕실 쪽으로 향했다. 여전히 빠른 걸음이었다.
"저도 손이라도 좀 씻고 올게요."
아르타니스도 이미 욕실 쪽에 거의 다다른 사촌 자매를 따라가 버렸고, 거실에는 다시 핀골핀과 피나르핀만이 남게 되었다.
"형님, 충고 하나 드려도 될까요?
이번에는 제대로 핀골핀 옆에 앉은 피나르핀이 입을 열었다.
"충고? 그래, 어디 들어보지."
피나르핀 쪽에서 먼저 핀골핀에게 말을 거는 일은 드물었다. 그는 대개 형의 말을 조용히 듣고, 한 두 마디를 덧붙이는 정도였다. 과묵한 편은 아니었지만, 스스로의 주장을 강하게 세우거나 남을 가르치려 드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런 동생 쪽에서 먼저 충고라는 말을 꺼내다니, 조금은 놀라웠다.
"페아나로 형님을 더 이상 가까이 하지 않는 게 좋을 겁니다."
상당히 의미심장한 말이었다. 티리온에서 핀웨의 장남인 페아노르와 차남인 핀골핀의 사이가 나쁘다는 것을 모르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그는 가까이 하지 말라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나도 형님이 좋은 건 아니다. 다만,"
핀골핀은 순간 당황했지만, 겉으로 내색은 하지 않았다. 눈치가 빠른 편인 건 알고 있었지만, 자신과 형님의 관계를 어느 정도 알고 있다는 듯한 동생의 말은 다소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 정도로 티를 내고 다닌 건가 싶어 잠시 기억을 헤집어 봤지만, 남들 앞에서 크게 문제가 될 만한 행동들을 한 적은 없는 것 같았다.
"다만? 형님도 다른 요정들처럼 페아나로 형님의 재능에 반하기라도 하신 겁니까?"
물론, 그럴 리가 없었다. 핀골핀도 이복형제인 페아나로의 재능은 인정하고 있었지만, 부러워 해 본적은 없었다. 제각기 다른 재능을 가지고 있고, 누구에게라도 남이 가지고 있지 못한 재능 하나 정도는 가지고 있으니 남의 재능을 질투해 본 적은 없었다. 또, 그는 재능만으로 상대에게 빠져들 정도로 단순하지 않았다.
"그럴리가. 단지, 분란을 일으키고 싶지 않을 뿐인 거다."
이 말은 어느 정도 사실이었는데, 그가 행여 순순히 페아노르의 부름에 따르지 않으면, 집 안에 큰 소리가 나는 것은 예사였다. 그렇다고 핀골핀이 형의 말을 전적으로 따르는 것은 아니었지만, 최소한 불렀을 때 가지 않으면, 며칠이고 싸늘한 시선을 마주해야했다. 그것마저도 그에게는 크게 중요한 것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아버지인 핀웨에게만큼은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았다. 이복형제들의 우애를 바라고 있는 핀웨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다행이지만요."
형의 답을 들은 피나르핀은 온화하게 웃었다. 형제들 중에서 가장 어머니를 닮은 그는 페아노르도 핀골핀도 짓지 못하는 환한 웃음을 짓고는 했다. 그러나 그의 웃음은 어머니인 인디스의 웃음과는 약간 달랐다. 깊이를 알 수 없는 웃음이었다. 핀골핀마저도 동생이 그렇게 웃을 때면,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기 어려울 때가 있었다.
"할 말은 그게 전부인 게냐?"
"예, 간만에 차라도 한 잔 하시겠습니까? 얼마 전에 마셨던 것이 맛이 아주 좋던데."
"괜찮다. 그나저나 핀데카노 이 녀석은 일찍 들어오라고 누누이 일렀는데."
별 싱거운 녀석 다 보겠다는 표정으로 핀골핀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차 한 잔 마시는 게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지만, 지금은 안 될 것 같았다. 차남은 평소처럼 서재에 틀어박혀 있었고, 막내는 뒤뜰에서 놀고 있고, 딸도 집에 들어왔는데, 장남은 아직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그나마 아레델이야 집에 들어오기라도 하지만, 장남은 아예 밖에서 자고 돌아오는 일도 있었다.
"페아나로 형님 저택에 있지 않겠습니까."
핀골핀의 장남인 핀곤이 페아노르의 장남인 마에드로스를 얼마나 따르는 지는 모든 가족들이 잘 알고 있었다. 핀골핀도 보나마나 아들이 사촌형 곁에 붙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왜 그렇게 쫓아다니는 지 가끔은 아버지인 그도 이해가 가지 않을 지경이었다.
"그래, 그렇겠지. 제 발로 올 생각을 안 하니 나도 아들 녀석을 데리러 가야겠군."
"형님 저택에 가시렵니까?"
"그래, 나는 나가봐야 하니까, 기다리지 말고. 네르웬이 오면, 데리고 먼저 돌아가거라."
외투를 걸어둔 쪽으로 가려던 핀골핀이 걸음을 멈추었다. 피나르핀의 손이 그의 팔을 붙잡은 탓이었다. 어느 새 일어선 동생은 핀골핀 옆으로 바짝 다가와 있었다.
"염려가 되어 그렇습니다."
그는 여전히 얼굴에서 웃음을 거두지 않은 채였다.
"불길입니다. 페아나로 형님은 언젠가는 제 스스로도 태워버리고 말 겁니다. 곁에 계속 있다가는 날개가 타들어가는 줄도 모르는 불나방 꼴이 되겠지요."
그렇게 말하는 동생은 상당히 낯설었다. 어딘가 이복형제를 떠오르게 했지만, 지나친 상상이라 생각한 핀골핀이 동생의 손을 떼어냈다.
"네가 상상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다. 형님에게 휘둘릴 생각은 없으니까."
그는 외투 걸이의 가장 위쪽에 걸려있던 망토를 집어 들었다. 곧 식사를 해야 할 테니 얼른 큰아이를 데려와야 했다.
※
복흑 피나르핀을 써 보려다가 장렬하게 실패했습니다. 역시 이 형제는 재육한 뒤의 일을 쓰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썰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핀골핀+글로르핀델) (0) | 2014.03.21 |
---|---|
(핀웨x핀골핀) (0) | 2014.03.17 |
(갈도르+투르곤) (0) | 2014.03.17 |
(글로르핀델x핀골핀) (0) | 2014.03.16 |
(멜코르x핀골핀) (0) | 2014.03.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