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없는 수위 조각글



(글로르핀델x투르곤x투르곤)



"아버님?...아...읍..."


처음이었다. 소년의 아버지가 소년에게 입을 맞춘 건 처음 있는 일이라 당황한 소년이 무심코 몸을 뒤로 빼려다가 다시 붙들려 깊은 입맞춤을 나누게 되었다. 뜨거운 혀가 닿는 기분이 이상했지만, 무언가가 목을 타고 넘어와서 화들짝 놀랐다. 소년이 그것을 삼키고 나서야 핀골핀이 입술을 떼어냈다. 목구멍으로 불덩이가 내려가는 것 같았다.


온 몸이 갑자기 뜨거워져서 투르곤이 울먹거리는 눈으로 아버지를 올려다 보았다. 핀골핀은 무덤덤하게 아들을 침대로 밀쳤다. 그가 아들에게 먹인 것은 미약이었다. 흔히들 최음제라고 부르는 약물이었는데, 암암리에 뒷골목에서 거래되는 것을 입수한 그가 페아노르에게 사용하기 전에 시험삼아 투르곤에게 사용하게 된 것이었다. 혹시라도 부작용이 있으면 곤란하니 미리 효과를 가늠해 볼 필요가 있었다.


타오르는 불에 기름을 끼얹은 것처럼 투르곤이 뜨거워진 몸을 주체하지 못해 덜덜 떨였다. 생전 해 본 적 없는 말들이 투르곤의 입에서 나왔다. 핀골핀은 씩 웃으며 아들의 몸을 희롱했다. 꽤 비싼 돈을 주고 사들인 것인데 이 정도의 효과라면 충분히 값어치가 있었다. 유두를 몇 번 만지작거린 것만으로도 금세 투르곤의 분신이 고개를 들었다. 평소라면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꼿꼿하게 세워진 분신을 세게 움켜쥐자 투르곤이 온 몸을 비비 꼬았다. 손가락을 다리 사이로 집어 넣자 이미 푹 젖어 애액이 손가락에 번들거리며 묻어나왔다. 약의 효과가 만족스러웠지만 핀골핀은 아들과 마저 관계를 하는 것 보다는 어서 형님에게 약을 써 보고 싶었다.


핀골핀이 손을 풀자 투르곤의 입에서 한숨이 흘러나왔다. 뿜어진 액체가 다시 소년의 몸으로 떨어졌다. 핀골핀은 그대로 침대에서 일어났다. 투르곤은 당황했다. 하지만 핀골핀을 잡을 수는 없었다. 잡았다가는 어떤 험한 일이 벌어질지 상상도 되지 않았다. 급하게 외투를 걸친 핀골핀이 아예 방 밖으로 뛰쳐나가버렸다. 그는 외투에 넣어둔 작은 약병을 꺼냈다. 병에는 한 알의 약이 남아있었다. 원래는 두 알이었는데 하나는 투르곤에게 사용했던 것이다.


투르곤은 몸이 불길에 휩싸인 것처럼 뜨거워서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손이나 발에 힘이 잘 들어가지 않았다. 그저 누군가 만져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아쉽게도 다른 이를 부를 만한 기운이 없었다. 하도 몸이 달아올라서 차가운 손길이 다가와 주었으면 했다. 그러던 차에 방문이 열리고 누군가가 들어왔다. 투르곤은 깜짝 놀랐다. 옷도 갖추지 못하고 알몸인 채여서 시종들이라도 들어왔으면 큰일이었다.


"투르카노?"


들어온 것은 글로르핀델이었다. 그는 핀골핀 저택에 찾아왔는데 서재에 소년의 모습이 보이지 않아 방으로 온 것이었다. 침대 위에서 몸을 늘어뜨리고 있는 투르곤을 발견한 그가 얼른 달려왔다. 투르곤이 글로르핀델을 보며 울먹거렸다. 그는 소년의 반응에 놀라 일단 침대 위에 걸터앉았는데 갑자기 소년이 그의 목에 팔을 걸었다. 반응이 평소와는 달랐다. 말조차 제대로 하지 못해 비음 섞인 목소리로 투르곤이 그에게 안아달라고 애원했다.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핀골핀이 투르곤에게 무언가를 먹였는데 그걸 먹고 나니 온 몸이 타들어갈 것 같다고 했다. 그 말을 듣자 이제 아들에게 약까지 쓰는 건가 싶어 글로르핀델의 입에서 작은 한숨이 나왔다. 소년은 말도 제대로 잇지 못하며 그의 몸에 자신의 몸을 비비며 연신 신음을 흘렸다. 그런 소년의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글로르핀델도 더 이상 참지 못할 것 같았다. 대개 핀골핀에게 강간과도 비슷하게 당하는 탓에 남이 다가오는 무서워하는 투르곤을 살살 달래면서 부드럽게 몸을 쓰다듬었는데 오늘은 투르곤 쪽에서 그를 유혹하고 있었던 것이다.


잠시 목에 감긴 소년의 팔을 떼어낸 글로르핀델이 방문을 꼭 닫고 잠금쇠까지 걸었다. 혹시라도 누가 보면 안 되었으니 말이다. 핀골핀은 집을 나갔으니 금방 들어오지는 않겠지만, 실수로 시녀라도 들어오면 변명할 말이 없었다. 다시 침대로 온 그가 빠르게 옷을 벗었다. 소년의 벌어진 입에서는 침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몸을 가누지 못해 이불 위를 휘적대고 있는 투르곤에게 그가 다정하게 입맞춤을 했다. 소년이 스스로 혀를 얽어오자 이성이 확 끊어져 나가는 것 같았다. 언제나 가만히 있는 소년의 혀를 그가 감아올리는 게 대부분이었는데 작은 혀가 글로르핀델의 혀를 몇 번이고 스쳤다.


밖에서 막 들어와 차가운 글로르핀델의 손이 닿자 투르곤이 흠칫했다. 그도 소년도 여유가 없었다. 부드럽게 애무부터 시작하는 편이었는데 오늘은 그가 단번에 소년의 몸 속에 들어갔다. 다행히도 몸이 풀려있어서 별다른 저항은 없었다. 아무리 천천히 하려고 해도 주춤거리던 소년이 글로르핀델의 입술에 먼저 입을 맞춰왔다. 강하게 조여드는 아래 쪽도 계속 입술을 빨아오는 것도 너무 자극적이라 글로르핀델 쪽이 오히려 넋을 놓아버릴 정도였다. 소년의 다리를 확 벌린 그가  더 깊이 자신의 분신을 찔러넣고는 허리를 앞 뒤로 움직였다.


목구멍 깊은 곳에서부터 애타는 신음이 토해졌다. 투르곤은 글로르핀델이 허리를 움직이는 와중에도 그에게 맞춘 입술을 떼지 않았다. 입술을 빨아들일 듯 물고 있다가 혀를 집어 넣어 글로르핀델과 혀를 섞었다. 계속 뒤엉키던 입술이 확 떨어졌다. 글로르핀델이 소년의 안에서 사정하자 그 바람에 소년이 입술을 떼어버렸던 것이다. 핀골핀이 늘 안에만 사정하는 통에 그는 소년의 내부에서 사정하는 일이 없었지만, 나갈 틈을 주지 않고 꽉 붙들고 있던 소년 때문에 미처 나가지 못했던 것이다.


"...그...글로르핀델."


조금 전까지와는 달리 정신이 돌아온 듯 투르곤은 쑥쓰러워 눈도 마주치지 못하며 그의 이름을 입에 담았다. 그 때까지도 글로르핀델은 소년의 내부에서 빠져나가지 않은 채였다. 순순히 빠져나갈까 했지만, 소년은 아직도 글로르핀델의 분신을 놓아주지 않았다. 정신은 차렸지만, 몸은 아직도 약기운이 풀리지 않은 것 같았다. 글로르핀델은 소년의 고개를 돌려 자신과 마주하게 했다. 부끄러워서 자꾸 떨구려는 고개를 꼭 붙든 그가 소년의 귓가에 괜찮다고 상냥하게 속삭였다. 어찌나 달콤한 목소리였는지 투르곤은 제 귀가 녹아내리지 않았을까 걱정이 될 정도였다.


한참을 침대 위에서 뒹굴고 나서야 둘은 서로에게서 떨어졌다. 투르곤은 여분의 이불로 몸을 꽁꽁 감싼 다음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글로르핀델은 아예 그에게서 등을 돌리고 있는 소년이 귀여워 머리를 걷어 올리고 뒷목에 입술을 부볐다. 이렇게 적극적인 소년을 볼 수 있다면, 때로는 약물의 힘을 빌리는 것도 괜찮다는 생각이 잠시 그의 머리를 스쳤지나갔다. 하지만, 그는 곧 얼토당토 않은 생각이라며 세차게 고개를 흔들고는 소년의 어깨를 등 뒤에서 껴안았다. 



트위터에서 몇 번 얘기했던 썰인데 태그 미션으로 받아서 해 보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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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조 주의.

 

 

[실마릴리온/글로르핀델x투르곤] 별똥별 (수정 中)

 

 

오늘도 곤돌린의 왕은 별이 총총하게 박힌 밤까지 업무에 몰두하고 있었다. 적당히 하고 잠자리에 들어도 아무도 그를 탓하는 자는 없었지만, 왕은 자신을 휘몰아치는 편이어서 보통은 새벽녘이 되기 전에는 잠드는 일이 드물었다. 자정도 지난 시간에 글로르핀델은 왕의 침실에 몰래 숨어들었다. 복도를 오가는 시종들도 적거니와 비밀통로를 통해 들어온 것이라 그가 들어오는 것은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문을 대뜸 열어젖힌 그는 창가에 안아있는 왕에게 달려왔다. 왕은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이었다. 금발의 영주가 왕에게 달려오는 일은 흔하다 못해 일상적인 일이었다. 막상 침의로 갈아입었지만, 잠이 잘 오지 않아 챙겨온 일들을 하던 참이었다.

 

부둥켜 안으려는 글로르핀델을 책으로 밀어낸 투르곤은 하던 일을 계속했다. 어쩔수 없이 글로르핀델도 왕의 옆에 의자를 가져와 앉았다. 자신을 봐주지 않는 것은 아쉬웠지만, 일에 몰두하고 있는 왕의 옆모습을 보는 건 충분히 즐거웠다. 담담한 표정으로 서류를 응시하는 눈이나 책상 위로 흘러내리는 긴 머리카락, 머리카락을 넘길 때마다 드러나는 목선 같은 것들에서 그는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무의식 중에 손이 왕에게 향한 적도 있었다. 그 때마다 투르곤은 별 반응이 없었다.

 

"별똥별이 떨어집니다. 폐하."

 

그들은 창가에 있었는데, 창 밖으로는 남색으로 변한 밤하늘이 있었다. 왕의 침실은 상당히 높은 곳에 있었기 때문에 시야를 가리는 것이 없었다. 산맥 너머로 보이는 티끌하나 없는 하늘이 손에 잡힐 듯 가까웠다. 달과 별만이 있는 하늘에 갑자기 길게 선을 그리는 것이 있었다. 별똥별이었다. 글로르핀델이 그것을 보고 투르곤의 어깨를 쳤다. 그래도 투르곤은 담담하게 대답을 할 뿐이었다. 별 것도 아닌 일에도 호들갑을 떠는 그라서 일일이 반응을 해 줄수는 없었다. 

 

"그래. "

"아무 소원도 안 비실겁니까?"

 

이미 몇 천살씩이나 먹고서 아이들처럼 별똥별에 소원을 빌자고 하는 글로르핀델을 왕이 슬쩍 돌아보았다. 금발의 요정은 당연한 말을 했는데 왜 보냐는 듯 해맑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무렇지도 않게 거리의 여성들에게 추파를 던지는 그의 평소의 모습과는 참으로 달라서 투르곤은 마음속으로는 웃음이 나왔다. 다만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 했다. 왕이 웃기라도 하면, 글로르핀델은 왜 웃는거냐고 하면서 대화가 길게 이어질 것이다. 슬슬 가져온 일도 끝나가고 있었기 때문에 왕은 일에 집중하고 싶었다.

 

"내가 왜..."

"보세요. 또 떨어집니다."

 

왕은 창을 등지고 있어서 뒤돌지 않으면 창밖을 볼 수 없었는데, 이번에는 글로르핀델이 아예 왕의 어깨를 잡고 흔들었다. 양피지 위에 글씨를 쓰던 왕은 그 바람에 다시 새로운 양피지를 꺼낼 수밖에 없었다. 위로 쭉 검은 선이 그어지고 말았던 것이다. 이미 거의 다 써가고 있었는데, 글로르핀델 덕분에 다시 새로 써야했다. 왕의 다른 형제들이었다면, 아마도 그와 당장 말싸움을 했을 것이다.

 

 

"계속 방 안에 있으려면 가만히 있든지, 아니면 나가든지."

"투르카노도 얼른 소원 비세요. 별똥별이 맨날 떨어지는 것도 아니잖아요?"

 

투르곤은 약간 짜증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아무리 관대한 왕이라도 한계는 있는 법이었다. 왕의 말에도 글로르핀델은 꿋꿋했다. 투르곤이 창을 한 번 돌아보기 전에는 성가시게 구는 것을 멈추지 않을 듯 했다. 별똥별이 매일 떨어지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들은 수도 없이 별똥별이 하늘을 가르는 것을 보았는데 뭐가 그리 특별하다는지 호들갑을 떠는 글로르핀델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굳이 소원 같은 거 빌지 않아도 전 지금도 충분히 만족스럽습니다."

 

사랑하는 아내가 곁에 있지 않는 건 애석한 일이었지만, 자신의 몸처럼 아끼는 누이와 아내를 빼어닮은 딸과 충성스러운 영주들에 그를 따르는 수많은 백성들까지. 아버지나 형과는 언제 다시 만날지 알 수 없었지만, 왕은 정말로 더 바라는 것이 없었다. 이정도면 족하다고 생각했다. 더한 것을 바라고 싶지는 않았다. 잃지 않는 것만으로도 괜찮다고 손 안에 있는 것만이라도 지키고 싶었다.

 

"진심이십니까?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시나요?"

"글로르핀델은 대체 무슨 소원을 빌었길래 이렇게 유별나게 구시는 겁니까."

"당연히 비밀이죠."

 

왕의 말에 글로르핀델은 코 앞까지 얼굴을 들이밀었다. 정면으로 마주한 그의 얼굴에는 자신이 왕을 방해하고 있다는 인식이라고는 조금이라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태연했다. 참다 못한 왕이 글로르핀델의 자리에서 일어났다. 왕이 일어섰음에도 그는 능글맞은 미소를 머금으며 집게 손가락을 흔들 뿐이었다. 흥분해 봤자 자신만 바보가 될 거라는 생각이 든 투르곤이 창문에 달린 커튼을 내려버렸다. 밖이 보이지 않으면, 더는 저렇게 시끄럽게 구지는 못할 것 같았다. 왕은 방에 들어오자마자 커튼을 쳐 두지 않은 것을 후회했을 정도였다.

 

"자, 그럼 소원도 다 비셨으니까 얌전히 앉아 계시죠."

"커튼을 치면 창 밖이 안 보이지 않습니까!"

 

붉은색 벨벳으로 된 두꺼운 커튼을 치고 틈새마저 리본으로 단단히 매듭을 지은 투르곤이 흡족한 표정으로 글로르핀델을 돌아보았다. 이러면 더는 밖을 보라는 소리는 못하지 않겠냐고 말하는 것 같은 얼굴에 글로르핀델이 책상을 탕 쳤다. 책상 위에 있던 잉크병이 흔들려서 아예 엎어져 버렸다. 당연스럽게도 왕이 방에 들어와서부터 계속 하고 있던 일이 물거품이 되었다. 검은색 잉크가 양피지 위를 시커멓게 물들여 버렸다. 글로르핀델의 시선은 왕에게 고정되어 있었지만, 왕은 책상 위로 눈이 갈 수밖에 없었다. 작게 한숨이 나왔다. 도대체 무슨 영광을 보겠다고 잠자리에까지 일을 가져왔는지 탄식이 나올 지경이었다.

 

"더 보시고 싶으시면 나가시면 됩니다. 방 안이 조용해질테니 저야 그 편이 좋습니다."

 

애써 미소를 지은 왕이 글로르핀델의 어깨를 밀었지만, 그는 도리어 왕의 어깨를 잡아 끌어서 침대로 데려갔다. 이대로 두면 밤을 새울 게 뻔했다. 밤샘을 한다고 피곤함을 드러낼 왕도 아니었지만, 그로써는 걱정을 안 할 수가 없었다. 재촉하는 이도 없는데 왜 이리 열성인지 글로르핀델이 염려를 할 정도였다. 의도한 바는 아니었지만, 차라리 잉크를 엎은 게 잘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만 주무세요. 어차피 가져오신 일도 처음부터 다시 해야할테니까 마저 할 생각은 포기하시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지금 자도 몇 시간 뒤면 일어나야 될텐데 피곤할 겁니다."

 

그의 손길을 물리치려는 왕을 침대 속으로 밀어 넣은 글로르핀델은 목까지 이불로 덮어버렸다. 꼼짝없이 침대 속에 갇힌 꼴이 된 투르곤은 어쩔 수 없다는 듯 눈을 감았다. 잘 생각은 없었지만, 그래도 푹신한 침대에 누우니 서서히 잠이 몰려드는 것 같기도 했다. 글로르핀델은 침대 옆에 앉아서 왕의 얼굴을 내려보았다. 감긴 눈꺼풀 아래로 속눈썹이 촘촘했다. 막 잠이 들려는데 깨우면 안 될 것 같아 그는 왕의 뺨에만 살짝 입술을 스쳤다. 이대로 바로 나가버리면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 버릴테니 잠드는 모습을 보고 나갈 생각이었다.

 

"주무세요? 투르카노?"

 

작게 이름을 불렀지만, 투르곤은 대답이 없었다. 이불 속으로 밀어 넣었을 때는 일을 다 끝내기 전에는 자지 않을 것 같더니 피곤했는지 생각보다 금방 잠이 든 모양이었다. 그래도 혹시 몰라서 그는 창가로 가서 커튼의 매듭을 풀었다. 그래도 왕은 깨어나지 않았다. 창 밖에서는 아직도 별똥별이 떨어지고 있었다. 점점 간격이 뜸해지더니 굉장히 밝은 별똥별 하나가 떨어졌다. 글로르핀델은 그 순간 소원을 빌었다. 엘베레스 길소니엘, 곧 별들의 여왕인 바르다를 찬양하며 자신의 염원이 이루어지길 기원했다. 다시 커튼을 닫은 그가 잠들어 있는 투르곤게 천천히 다가갔다. 지극히 평온한 얼굴이었다. 글로르핀델의 손이 잠시 잠든 이의 이마에 얹혔다. 그는 하나뿐인 주군이 이 밤 내내 평안하길 바라고 있었다.

 

 

진단메이커에서 본 별똥별이라는 소재가 인상 깊어서 짧게 적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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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쿠알론데 관련 동인 설정 주의

 

 

[실마릴리온/글로르핀델x투르곤] 알쿠알론데 01 (수정 中)

 

 

짐을 푼 글로르핀델과 투르곤은 저택의 접견실로 향했다. 1층의 오른쪽에 위치한 접견실 문은 이미 열려있었다. 그들이 들어가자 올웨가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반갑게 맞아주었다. 허리 아래까지 늘어뜨린 치렁치렁한 은발이 샹들리에의 빛을 받아 반짝거렸다. 그는 창밖으로 보이는 바다의 빛깔을 닮은 푸른색의 옷을 입고 있었고, 이마에는 사파이어가 여러 개 박힌 은색의 서클렛을 쓰고 있었으며, 팔에는 파란실로 소라고둥 무늬가 수놓아진 흰색의 기다란 숄을 걸치고 있었다. 실로 바다 요정인 텔레리의 군주다운 눈부시고 위엄 있는 모습이었다.

 

"어서 오십시오. 또 뵙는군요. 놀로핀웨의 아들 투르카노."

 

올웨의 딸인 에아르웬이 투르곤의 숙모였고, 에아르웬의 장남인 핀로드와 친해서 소년도 알쿠알론데에 위치한 올웨의 저택에 몇 번 와 본 적이 있었다. 그 외에도 글로르핀델과 단 둘이 왔던 적도 있었다. 군주는 친우인 핀웨의 손자 투르곤의 얼굴이 이미 익숙했다. 기억력이 좋은 편이기도 했고, 알쿠알론데에 찾아오는 놀도르가 드물기 때문인 것도 있었다. 같은 요정이기는 했지만 놀도르와 텔레리의 외모는 꽤 달랐기 때문이다.

 

", 당분간 군주님의 저택에서 신세를 지게 되었습니다."

 

투르곤은 올웨를 향해 정중하게 인사를 했다. 텔레리의 군주가 아니더라도 투르곤에게는 그가 사실상 조부 뻘이었으며, 식객처럼 그의 저택에 머무르는 것을 허락해 준 것에 대한 감사를 표하는 것이었다. 잠자코 듣고 있던 올웨가 소년의 손을 잡았다. 그의 손은 검조차 몇 번 잡아보지 않아 소년만큼이나 섬세하고도 매끄러웠다.

 

"어려워말고 편히 지내길. 그대의 조부와는 막역한 사이이니 조부처럼 대해도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폐하. 모쪼록 앞으로 이곳에 머무르는 동안 잘부탁드리겠습니다."

 

그의 말에 투르곤은 다시 한 번 인사를 했다. 놀도르의 왕자 중 한 명인 투르곤은 텔레리 군주인 올웨의 저택으로 보내지게 되었다. 핀웨는 자손들이 바냐르나 텔레리와도 잘 지내길 바랐고, 막내인 피나르핀은 아내인 에아르웬이 올웨의 딸이었으니 그의 자식들은 조부의 저택을 자주 방문했지만, 장남인 페아노르는 놀도르를 제외하면 전혀 관심이 없었으며 오히려 가까이 하기를 꺼리는 편이었다.

 

텔레리를 싫어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텔레리에 대해 잘 알고 있지도 않은 핀골핀과 그의 자식들이었다. 마침 핀골핀의 차남인 투르곤은 이런 저런 공부를 하는 것을 상당히 좋아했기 때문에 유학을 겸해서 알쿠알론데에 있는 올웨의 저택으로 오게 되었다. 올웨의 자식들은 모두 장성하여 출가를 했고, 아내는 장남의 저택에 머무르고 있었기 때문에 올웨는 저택에 혼자 살고 있었었는데, 종종 가족들이 저택에 들르기 때문에 외롭지는 않았지만, 친한 친구인 핀웨의 손자 한 명 정도를 자신의 저택에 살게 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매번 올 때마다 느꼈지만, 티리온과는 정말 달라서 신기합니다."

"그렇지요. 이 곳은 항구 도시니까 티리온과는 많이 다를 겁니다."

 

올웨는 투르곤을 볼 때면, 가운데 땅에서 지내던 시절의 핀웨를 떠올렸다. 소년은 요정 치고는 특이하게도 단발머리를 하고 있었는데, 핀웨도 소년 시절에 머리를 짧게 자르고 다녔던 것이다. 그는 소년보다도 더 짧게 목덜미가 다 드러날 정도로 짧은 머리였는데, 활동하기 불편하다는 이유에서였다. 어깨 위에서 살랑거리는 소년의 머리카락을 보면, 언뜻 친우의 그림자가 소년의 위로 스쳐지나가는 것 같기도 했다. 소년의 아버지인 핀골핀은 핀웨를 가장 닮은 자식이었으며, 소년은 그의 아버지를 많이 닮았으니 올웨가 그렇게 느낀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글로르핀델 여기 있는 것들과 저기 있는 것들을 가져가면 돼. , 그리고 그것도 들어 줘."

"투르카노, 조금씩 가져가서 보면 안 될까요? 아무리 그래도 이건 좀 많은데."

"안 돼. 같이 보는 게 더 낫단 말야. 여러 번 왔다 갔다 하는 게 더 귀찮을 것 같은데."

 

아직 성년도 되지 않은 왕자를 홀로 먼 곳에 보낼 수는 없어서 황금꽃 가문 영주의 외동아들인 글로르핀델이 호위를 겸해 보내졌다. 원래라면 성년도 아닌 투르곤을 다른 군주에게 보내는 것은 예의에 어긋나겠지만, 소년은 나이에 비해 상당히 어른스러운 편이었고, 올웨가 핀웨와 그 정도로 친밀한 사이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글로르핀델은 투르곤을 따라오게 되는 것을 상당히 기뻐했다. 그는 함께 보내지지 않았으면 스스로 따라나서겠다고 했을 정도로 소년을 아꼈다. 핀골핀 가문 아이들의 검술 스승이었지만, 그는 장남인 핀곤이나 장녀인 아레델보다 차남인 투르곤을 더 좋아했다. 고명딸인 아레델은 글로르핀델도 상대하기 힘들 정도로 말괄량이였고, 핀곤은 사촌형인 마에드로스 뒤를 쫓아다니느라 핀골핀 저택에서는 통 얼굴을 보기도 힘들 정도였으니 자연스레 투르곤과 친하게 지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물론 그 이유밖에 없는 건 아니었지만 말이다.

 

알쿠알론데에는 커다란 장서관이 있었다. 텔레리들이 오랜 세월동안 불러온 자신들의 노래를 아만 땅에 와서 책으로 만들어 냈고, 그것들은 장서관을 가득 채울 정도로 많았다. 마이아 옷세와 우이넨이 요정들에게 알려준 노래도 그 중에 있었다. 티리온까지는 전해지지 않은 수많은 전승들이 그곳에 있었다. 탐구욕이 강한 투르곤에게는 하루가 모자랄 정도였다. 덕분에 올웨의 저택까지 무수한 책들을 나르게 되는 것은 글로르핀델의 몫이었다. 투르곤에게 손과 발이 없는 것도 아니었지만, 또래들보다 키도 작고 힘도 약한 소년은 그날 보려는 책을 다 가져가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덕분에 가끔 글로르핀델은 호위로 와 있는 건지 짐꾼으로 와 있는 건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할 정도였다. 그래도 앞장서서 가던 소년이 미안한지 가끔씩 뒤돌아보며 미소를 지을 때면, 들고 있는 책들이 깃털처럼 가볍게 느껴질 정도였다.

 

"고마워, 글로르핀델."

"고마우면 다음에는 얇은 책들만 골라주세요."

 

간신히 저택의 방에 도착해서 글로르핀델이 책상 위에 책을 올려다 주자 발돋움을 한 투르곤이 그의 이마에 입술을 맞추었다. 소년이 다시 땅에 내려섰지만, 그가 소년을 꼭 껴안았다. 바닷바람이 소년에게서 느껴지는 것 같았다. 글로르핀델은 청명하면서도 맑은 푸른 빛깔인 소년의 눈을 바라보더니 그도 소년의 이마에 입술을 떨어트렸다. 그에게는 소년이 무엇보다도 사랑스러웠고, 곁에서 떼어놓고 싶지 않았다.

 

그의 품에서 벗어난 소년이 바로 책을 펼쳐 들었다. 글로르핀델은 소년을 남겨두고 방을 나왔다. 투르곤은 이렇게 한 번 책을 읽기 시작하면, 적어도 저 책들의 반 정도는 읽기 전까지는 그를 상대해 주지 않았으니, 그는 그 때까지 연무장에라도 가 있을 생각이었다. 텔레리들은 무술 연마에 놀도르처럼 공을 들이지는 않았지만, 알쿠알론데의 한 구석에도 자그마한 연무장이 자리 잡고 있었다.

 

텔레리는 검보다는 활을 즐겨 사용하는지라 연무장에는 과녁들이 주르륵 늘어서 있었다. 글로르핀델은 이미 올웨에게 연무장을 출입할 수 있게 허가를 받은 뒤였다. 원래라면 놀도르인 그가 텔레리들의 연무장에 출입해서는 안 되었겠지만, 비밀을 누설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받고 드나들게 된 것이었다. 올웨는 무예를 단련하는 데에는 큰 관심이 없었지만, 그의 청은 흔쾌히 들어주었다. 투르곤이야 텔레리의 문화를 배우러 왔다지만, 글로르핀델은 그런 데에는 별다른 흥미가 없었고, 특별하게 할 만한 일도 없었던 것이다.

 

화살이 허공을 가르는 소리들이 요란했다. 글로르핀델은 활보다는 검을 쓰는 것에 익숙했지만, 그렇다고 활솜씨가 좋지 않은 건 아니었다. 거의 백발백중에 가까운 솜씨였다. 티리온에 있는 친우인 에갈모스와 두일린이 훌륭한 궁사인지라 그들과 어울리다 보니 글로르핀델도 자연스레 활솜씨를 연마하게 되었던 것이다. 시시콜콜한 내기를 하는데 거듭해서 지나보니 자존심이 상한 그가 이를 악물고 연습을 했고, 최근에는 두 친구와 엇비슷할 정도로 실력을 향상시킬 수 있었다. 두일린과 에갈모스에는 아직 못 미쳤지만, 그래도 이제는 매번 지지는 않을 정도가 되었다.

 

그는 활을 반납하고 연무장에서 나오면서 투르곤도 데려와야 겠다는 생각했다. 검술이야 늘 가르쳐 주고 있었지만, 그가 활을 능숙하게 다루게 된 것은 얼마 되지 않은 일이라 아직 소년에게 가르쳐 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다른 지식들은 빠르게 습득하는 편이었지만, 몸으로 하는 것은 서툰 투르곤이라 쩔쩔 맬 것이 눈에 선했다. 그래도 그런 모습들이 더욱 귀여울 것이다. 글로르핀델은 당장이라도 소년을 데려오고 싶었지만, 소년은 보나마나 퉁명스러운 반응을 보일 것 같았다. 소년을 잘 구슬러서 데리고 와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그는 새하얀 항구 도시의 거리를 걸었다. 거리를 걷는 요정들의 복장은 놀도르보다 다소 가벼웠다. 선원들도 막 배에서 내려서 거리에 보였는데, 그들은 바닥까지 끌릴 정도로 길게 내려오는 놀도르의 전통 예복들과는 거리가 먼 간소한 옷차림을 하고 있었다.

 

"투르카노, 설마 아까 제가 나갔을 때부터 계속 그대로 있었던 겁니까?"

". 신기한 책들이 정말 많은 걸. 그나저나 생각보다 금방 돌아왔네."

 

투르곤은 방에 들어온 글로르핀델에게 시선도 돌리지 않은 채 계속 책만 읽었다. 이대로는 손에 들린 책을 다 읽고도 옆에 놓인 책을 또 집어들 것 같았다. 그는 의자에 있는 소년을 안아들었다. 손에 들려있던 책이 바닥에 떨어져서 책장들이 팔랑거리며 넘어갔다. 글로르핀델은 소년을 침대 위에 내려주었다. 그리고 그도 침대 위로 올라갔다. 두 명의 무게가 실린 침대가 푹 내려앉았다. 방에는 두 개의 침대가 있었지만, 매일 팔베개를 하고 소년을 재워 준다는 게 그도 그대로 잠이 들어 버릴 때가 많았고, 사실상 사용하는 것은 한 쪽 침대 밖에 없었다. 이번에 글로르핀델이 소년을 내려둔 쪽은 잘 사용하지 않는 침대 쪽이었다. 구석진 곳에 있는 침대와는 다르게 책상과는 가까워서 멀리 가지 않고 그 위에 소년을 내려놓은 것이었다.

 

"글로르핀델, 뭐 하는 거야. 책도 덜 읽었는데."

"제가 오늘도 이럴 줄 알았습니다. 책만 읽으러 여기 오신 겁니까?"

 

갑자기 침대 위에 눕혀진 소년이 그에게 불만스러운 시선을 향했다. 막 재미있어 지던 부분이었는데 글로르핀델 때문에 책을 마저 읽지 못하게 된 것이 마음에 들지 않은 모양이었다. 글로르핀델은 소년이 이럴 거라 생각은 했지만, 예상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는 소년의 행동이 야속하기만 했다. 곧 이어 싱긋 웃은 그가 소년의 귓가에 바람을 불어넣었다. 갑자기 뜨거운 바람이 귀에 스쳐서 소년의 얼굴에 당황하는 표정이 지나갔다. 뭐라 말을 하기도 전에 글로르핀델이 투르곤의 얼굴에 입맞춤을 퍼부었다. 이마에, 눈두덩이에, 눈가에, 콧날에, 뺨에, 턱에, 그리고 마지막으로 입술까지. 밀어내지도 못하고 그대로 가만히 그의 입맞춤을 받던 소년은 아쉬운 듯 한참이나 소년의 입술을 물고 있던 글로르핀델이 떨어져 나가고 나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이제 제 안의 알쿠알론데는 이런 곳입니다. 

Posted by ♡슈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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